[기고/제이 최]생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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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최(최재동)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래라카운티 교도소 심리분석관
제이 최(최재동)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래라카운티 교도소 심리분석관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사회가, 어른들이 잘못하여 세월호가 침몰돼 거의 300여 명의 목숨이 허무하게 사망과 실종으로 사라졌다. 고등학생들도 200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 꽃다운 영혼들을 어떻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참사에서 구조된 교감선생님이 조사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필자는 미국 지방정부의 심리분석관으로 자살 예방과 방지 업무를 맡고 있다. 멀리서 이번 참사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1, 3학년 학생들, 교사와 유족들이다.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향후 몇 개월부터 수년 또는 수십 년 경험할지도 모른다. 구조 작업에 동원된 잠수사들과 군경 모두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울증, 죄책감, 자괴감, 수면장애, 산만, 환청, 악몽, 식은땀, 대인기피, 분노폭발을 수시로 경험할 것이다. 누군가는 술로, 누군가는 약으로 순간적인 어려움을 피하려고 할지 모른다. 자살 시도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경우에도 ‘(사건 처리) 관련자들이 자살전조에 대해 조금만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생존자들을 위해, 그 가족을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 월남전 등 각종 전쟁 참전, 대형 사고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 구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위해 사회가 개입한다.

예를 들어, 미 샌타클래라카운티의 경우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우선 이 지역 내 상담사(카운슬러)를 모두 모아서 학교에 파견해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한다. 응급한 상황이라고 카운슬러가 판단한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나 정부 산하 전문기관으로 보낸다. 의료기관은 학생들의 치료 경과를 학교 측에 보고해야 한다.

자살의 위험이 높다고 느껴지는 청소년은 응급정신의학 전문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유한다. 심각한데도 본인이 치료를 거부할 경우, 정부가 권위를 인정한 전문가들이 72시간까지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목숨과 관련된 생명권이 인권보다 더 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단원고 아이들과 교사, 부모들을 위해 좀 더 강력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적으로 카운슬러를 보낼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계속 많은 카운슬러를 배치하고 운영해야 한다. 둘째, 문제가 발생한 후 상담해 줄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문제에 대해 먼저 알려주고 교육해야 한다. 셋째, 주변 사람들이 자살전조를 알아챌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넷째, 심적인 어려움이 클 때 바로 전문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핫라인’ 번호를 알려주고 동시에 인근의 정신건강센터를 알려줘야 한다. 자살은 우울증이 심할 때보다 조금 호전됐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조금 나아져 보인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정신건강까지 보살피고 도와 줄 책무가 있다. 무엇보다 이 끔찍한 참사가 본인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라는 의식을 우리가 심어줘야 한다. 더불어 이번 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자살시도의 예방을 위해 응급정신의학 전문 병원 강제입원제도가 시행되기를 바란다.

이번 사태로 정신적인 고통을 어찌할 수 없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여기 게재된 나의 e메일로 꼭 연락해 주시길 바란다.

제이 최(최재동)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래라카운티 교도소 심리분석관 jayewcc@gmail.com
#세월호#단원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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