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새정치연합, 방송을 잊어야 집권이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국회 미방위의 다걸기 투쟁… 방송 개입 의도 드러내
집착과 과민 반응은 어두운 이미지만 부를 뿐
‘남의 탓’으로는 근본적 쇄신 안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의 고질병이 도졌다. 방송에 끝없이 집착하는 증세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다른 법안들도 처리할 수 있다며 굳게 버티고 있다. 새누리당이 이에 반대하면서 미방위의 모든 법안이 꽁꽁 묶여 버렸다.

국회 미방위에는 여야가 이미 합의해 놓은 법안이 127개에 이른다. 6·4지방선거까지 앞둔 마당에 민생 법안은 적극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 지지를 얻는 데 득이 될 수 있다. 많은 유권자가 이런 ‘발목 잡기’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새정치연합이라고 모르지 않을 터이다. 그럼에도 다른 것을 다 잃더라도 이 법안은 사수하겠다는 투쟁 의지로 가득하다.

최근 새정치연합은 KBS 입사시험의 면접 질문을 놓고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면접관들이 응시자들에게 “종북세력이 있다고 보느냐” “애국가 4절을 아느냐”고 질문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자 이를 문제 삼았다. 새정치연합은 “응시자 성향을 확인하기 위한 사상 검증”이라며 KBS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할지는 KBS의 고유 권한”이라는 조롱 섞인 말을 KBS 내부로부터 들어야 했다.

민주당 시절인 올해 3월 MBC가 임원 인사를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은행강도에게 은행 금고 맡긴 꼴”이라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민주당은 공영방송 노조의 파업이 있을 때마다 지지 방문을 했다. 방송사 임원은 ‘적’으로, 노조는 ‘우군’으로 여기는 듯하다. “방송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지만 누구보다 방송에 개입하려 드는 쪽은 새정치연합이었다.

이번 방송법 문제는 방송 편성의 권한을 방송사 내부에서 누가 갖느냐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이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 편성에 대해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 내용, 분량, 시각, 배열을 정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방송사업자가 어떤 방송을 내보낼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새정치연합은 방송사 내부의 편성위원회를 노사 동수(同數)로 구성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현재는 방송사업자가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편성하도록 되어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편성 문제에서 방송사 노사가 ‘상하 관계’에서 ‘대등 관계’로 바뀌는 큰 변화가 이뤄진다.

당장 소유주가 확실한 민간방송에서는 ‘경영권 침해’라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고 공영방송이라고 해도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우파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공영방송 노조의 힘은 여전하다. 방송사가 이승만 박정희 백선엽 다큐 프로그램을 내보내려면 온갖 홍역을 치러야 하고, 북한 인민군의 군가를 작곡하고 6·25전쟁 때 중공군으로 내려온 정율성의 다큐가 버젓이 공영방송의 전파를 탔다.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는 강성 노조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새누리당의 담당 간사가 이런 위헌적 개정안에 덜컥 합의해준 것은 한심한 일이었다. 새누리당은 2004년에도 ‘일부 위헌 결정’을 받은 신문법 통과에 합의했던 전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새정치연합이 “국회 미방위에 법안이 묶여 있는 것은 전적으로 새누리당 책임”이라고 우기는 것은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다. 개정안을 밀어붙여 방송사 노조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방송을 만들려는 계산임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새정치연합은 정부나 상대 정당의 정책을 일단 반대부터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왔다. 조작이나 음모론을 내세워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툭하면 북한을 두둔하는 인상을 주어온 것도 사실이다. 방송이 불공정해서 새정치연합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인식에 계속 갇혀 있으면 근본적 쇄신을 이뤄낼 수 없다. 민주화 시대에 방송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둡고 칙칙한 인상을 더할 뿐이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의 방송 대응은 번번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 때 방송 장악 시도와 공영방송의 좌편향 프로그램들은 국민의 반감을 불러와 최악의 지지율을 초래했다. “야당이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다”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종합편성채널 출연 거부’ 같은 강박증세가 한몫을 했다. 야권의 낮은 지지율은 남의 탓이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방송을 빨리 잊을수록 차기 집권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방송#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방송법 개정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