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용기를 내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허리띠가 자꾸만 조여드는 느낌이더니 역시나 몸무게가 늘었다. 지난 주말에는 운동을 해볼 요량으로 아파트 공원도 몇 바퀴 돌았고 비록 한두 끼니지만 점심도 굶었는데….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다이어트가 힘든 것은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겨우 감량 목표치를 달성해도, 몇 개월 마음 놓고 있다 보면 몸무게는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간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식욕을 참아내려는 굳은 의지다. ‘이 정도 먹는다고 큰일이 나겠어?’라는 느슨한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과식하는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나고 반짝 절식(絶食)과 운동으로 몸에서 빠져나갔던 지방은 금세 다시 차오른다. 밤늦게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고소하고 시원한 ‘치맥(치킨과 맥주)’의 유혹을 이겨낼 정도의 강한 의지가 있어야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식욕과 권력욕에 공통점이 많아서일까. 질기고 질긴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관행은 좀처럼 줄지 않는 체중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약속은 연초마다 세우는 다이어트 목표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뻔한 레퍼토리다. “이번엔 꼭 빼고 말겠다”며 운동기구나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들이는 것처럼, 낙하산 근절을 약속한 정부도 공공기관장 공모제며 임원추천위원회 강화 등 매번 그럴싸한 대책을 내놨다.
다이어트에 실패한 뒤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고 억울해하며 자기방어에 나서는 것도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뒤 정부가 내놓는 궁색한 변명들과 닮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더 이상의 낙하산은 없다”며 낙하산 인사 관행을 끊어내는 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집권 초에는 몇몇 금융공기업 기관장과 금융회사 경영진에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 출신)’들이 잇따라 임명되며 비판 여론이 들끓자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대형 공공기관장에 내정됐다는 하마평이 돌았던 관료 출신 몇 명이 배제됐을 뿐 공공기관장 자리는 다시 정치인과 또 다른 관료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최근 잇따르는 공공기관 감사와 비상임이사 인사에서는 더욱 뻔뻔한 낙하산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 임원 직위별로 세부 자격요건을 정해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힌 뒤 일주일 만에 네댓 명의 새누리당 전 의원과 대선캠프 출신 인사들이 줄지어 공공기관 감사와 사외이사에 임명됐다.
다이어트가 식욕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이라면, 낙하산 인사 근절은 무절제한 권력욕을 이겨내기 위한 정권 내의 투쟁이다. 의지가 박약하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낙하산은 없다”던 박근혜 정부의 선전포고가 허망한 패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