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기초단체장 정당공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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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지방선거 룰을 정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31일로 활동시한이 끝나지만 아직도 기초선거 ‘룰’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운 이슈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폐지 여부입니다. 대통령 공약사항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간에 쫓겨 시급히 결정하기에 너무 중요한 사안이므로 이번 지방선거까지는 기존대로 가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유지 쪽이, 민주당은 폐지 여론이 우세합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정당공천제 폐지 대신 오픈프라이머리를 제시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도 많습니다. 이참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쟁점이 무엇인지 찬반 의견으로 알아봅니다. 》

▼ 정당공천 폐지는 정당민주주의 부정하는 것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정당공천 폐지는 위헌의 소지가 크다. 헌법의 근간인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당은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정책 개발, 민의 형성과 결집, 인재 발굴, 국정 통제, 책임정치 실현은 정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헌법은 정당 설립 및 활동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한 정당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정당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따라서 선거 참여는 정당의 존재 목적이다. 따라서 정당을 특정 선거에서 배제하는 것은 이러한 정당의 기능과 참정권을 부정하는 게 된다.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신진 세력의 당선을 봉쇄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결과적으로는 지역 유지와 같은 토호세력, 재력가의 당선이 유리해진다.

또한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지방자치제의 현대적 기능인 다원적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실현이 무력해진다. 지방자치를 통해 정책 결정과 집행권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분산시킴으로써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지자체 상호 간의 수직적·수평적 권력통제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다원적 민주주의와 권력분립 또한 정당을 통해 실현된다. 따라서 지방선거에서 정당 참여를 봉쇄하는 것은 이러한 지방자치제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아울러 여타의 선거에서 인정되는 정당공천을 유독 기초선거에서만 금지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기초선거의 후보자와 유권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헌법재판소도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경우를 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고, 지방분권이라는 자치 기능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판시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무소속 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나 추천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방할 수 없다. 다만 정당의 당원을 지냈다는 경력을 표시하는 것은 허용된다.

정당공천을 금지하면 모든 후보자는 무소속이 된다. 이 경우 모든 무소속 후보자가 특정 정당에서 지지나 추천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경우에도 무소속 후보자가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도록 하는 건 기본권 침해이며 위헌이라고 헌재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추천 표방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해도 여전히 위헌이다. 왜냐하면 한쪽에서는 정당공천(추천)을 금지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정당추천 표방을 허용하는 게 모순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정당추천 표방 허용은 정당공천과 동일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후보자의 당원 경력 표시 허용도 마찬가지로 같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정당공천을 폐지함으로써 얻으려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지방의회 선거에는 지역구 선거와 더불어 비례대표 선거도 있다. 비례대표제는 표의 등가성 제고, 소수·신진 세력의 지방자치 참여 확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등 다양한 장점을 지닌다. 정당공천 폐지는 정당공천을 전제로 하는 비례대표제의 폐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비례대표제 확대라고 하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반헌법적 처사인 셈이다.

결국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 허용과 관련해서는 헌법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 해결은 정당의 민주화나 상향식 공천제, 정당의 지방분권화, 비례대표제의 확대 등 다양한 제도 보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지역 일꾼’ 당적 없어야 외풍에 안 흔들려

이인재 파주시장 (민주당)
이인재 파주시장 (민주당)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내건 공약이지만 허송세월만 하다 이제야 난리 법석이다. 최근 새누리당 내 분위기는 정당공천체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민주당의 경우 지도부는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내부의 반대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결국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내세웠던 공약(公約)이 헛된 공약(空約)으로 변해 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 국민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약속은 시들해지고 있다. 그 대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며 온갖 변명이 넘쳐 난다. 이들은 “정당공천제가 없어지면 후보 난립으로 선거가 과열될 우려가 높다”며 국민의 기억 속에서 약속이 지워지기만 바라는 눈치다. 또 “여성과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위해선 공천제도가 필요하다”며 폐지 불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금은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19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 국민의 정치적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정보 매체가 다양해져 후보자에 대한 검증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다. 이리저리 꼬아 가며 공천제 유지를 위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의 눈에는 속셈이 빤히 보이는 수일 뿐이다. 언제부터 정치권이 그렇게도 선거 과열을 걱정하고 여성과 소외 계층을 우선으로 생각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솔직하고 속 시원하게 얘기를 못 하는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공천권이란 칼자루를 내려놓기가 너무나 아깝다고.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선 정당공천이 폐지돼야 한다는 비율이 6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시행된 한 여론조사에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4.3%,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25.3%,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20.4%였다. 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의 2배 이상이다. 조사기관 및 지역별로 약간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영남지역에선 75.8%, 전북에선 71.3%가 폐지에 찬성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기존 정당 중심의 정치 구조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과 혐오 증상이 여론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년간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점 하나가 있다. 여당 시장이라고 해서 정부 지원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야당 시장이라고 해서 덜 받는 게 아니란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한 각자의 자세와 노력만이 중요할 뿐이다. 지방까지 중앙정치의 논리를 대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자체장은 소신을 갖고 오로지 지역 민생 해결만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면 될 뿐이다. 그가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지역 주민 생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후보자는 당적이 없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다. 국민에게도 정당이 아니라 후보자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정당에서 후보자를 선택해 내려보낸다면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 여론이다. 정치권에선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 공천권이란 눈앞의 달콤함에 취해 국민과의 약속을 헌 신짝 버리듯 해서도 안 될 일이다. 국민을 이기려 한 정치치고 끝이 좋았던 사례는 본 적이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가치를 무시하고 당리당략만으로 법을 만들려 한다면 결국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가 뼈저리게 와 닿는 요즈음이다.

이인재 파주시장 (민주당)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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