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기욱]美 또는 中,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美中 갈등 있지만 상호의존도 커… 냉전시대 美蘇관계와는 달라
中, 美주도 체제 깰 힘-의도 없고 韓美동맹 굳건히 유지되는 한 美도 韓中관계 발전 반대 안해
한국 샌드위치論은 현실 호도할 수 있는 위험한 담론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최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참혹한 숙청에서 보듯이 북한 내부 사정도 그렇고,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한일, 일중 간의 갈등도 악화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많은 기대를 했던 작년과는 달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갑오년 새해를 맞고 있다. 올해 다가올지도 모를 동북아의 험한 파고를 넘기 위해선 한국 외교안보의 기본 방향과 축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외교안보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미중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요즘 한국에서 눈에 띄게 부상하는 담론 중의 하나가 소위 미중 간 ‘샌드위치론’이다. 즉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주장이다. 군사 안보 면에선 미국이 중요해도 중국의 부상,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으며 이때 ‘배를 갈아탈 타이밍’을 잘 찾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을 호도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다.

우선 샌드위치론이 성립하려면 두 나라의 중요성이 대등한 수준에 있어야 한다. 흔히들 미국과 중국을 G2로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중국인들조차 꼭 달가워하는 것도 아니다. 2009년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총리였던 원자바오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G2란 말이 중국으로선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상승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미중관계는 과거 정치 군사적 중심의 미소(美蘇)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냉전시대가 끝난 후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체제 속에서 가장 덕을 많이 본 나라가 중국이며 당분간 현 체제를 깨고 중국 주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 의도나 힘이 없다. 미소 간 선택을 해야 했던 냉전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미 동맹의 축만 확고하다면 미국 입장에선 한중관계가 발전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다.

미중관계를 갈등과 대립으로만 보는 것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물론 갈등적 요소가 존재하지만 현재의 미중관계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상호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양국 간 갈등은 서로에게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워싱턴의 중요 담론인 ‘중국 위협론’이 반드시 미국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내에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중국에 대한 컨테인먼트(봉쇄정책)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치중하느라 소홀해졌던 아시아 지역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데 근본 취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번 방한 시 논란이 되었던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미국에 반하는 베팅을 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는 발언도 미국이 아직 건재하고 아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미국을 믿어도 된다는 의미이지 미중 간 선택을 하라는 건 아니다.

120년 전 갑오년은 한반도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동학 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이 모두 1894년 갑오해에 숨 가쁘게 일어났고 결국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우려스러운 동아시아의 정세를 헤쳐 가려면 한국 외교안보의 축을 재점검하고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아무리 중국의 중요성이 커졌다 해도 한국 외교의 기본 축은 한미 동맹이다. 더구나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는 순간 중국에 있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줄어들게 된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샌드위치론’과 같은 왜곡된 담론이 범람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중관계가 경시되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손상된 한미동맹 복원을 기치로 내걸다가 한중관계가 손상되었던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한중관계 개선이라는 큰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2014년엔 이러한 안보 축을 바탕으로 정부가 구상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구상을 본격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동북아 정세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중견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샌드위치론#중국#미국#북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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