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들은 매년 12월이 되면 새해 신년호에 실을 사진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기자들이 땀 흘려 찍은 수십 장의 사진 중에서 오직 1장만 1월 1일자 1면에 실리는 ‘영광’을 누린다. 그래서 1년 동안 ‘매의 눈’으로 사건 현장을 누비던 사진기자들은 이 시기만큼은 잠시 ‘작가 모드’로 바뀐다. 필자도 입사 후 17년간 매년 이런 작업을 반복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신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신년호에 일출 사진을 자주 싣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그만큼 희망이 담긴 메시지를 원하는 것일까. 해는 어디에도 있고 언제든 있지만, 사진기자들이 굳이 추운 날을 골라 해변이나 산에서 해를 찍는 것은 해돋이 명소가 있듯이 사진도 잘 나오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 때 마주하는 해는 여름 해보다 훨씬 아름답고 또렷하다.
말의 해인 새해를 앞두고 말(馬)과 해(日)를 같이 담으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많았다. 생각이 다들 비슷한지라 각 일간지 사진기자들은 말 서식지로 유명한 제주도와 동해안 등으로 카메라를 들고 떠났다. 필자는 전남 신안군 임자도 해변승마공원을 찾았다. 그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변에서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장소를 섭외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 법. 임자도 해변을 달리는 다섯 필의 말을 태양이 비춰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취재 때문에 귀경해야 했다. 마침 비슷한 콘셉트를 갖고 제주도로 출장을 간 후배 기자가 햇빛을 배경으로 달리는 말떼 사진을 찍어 본보의 올해 신년호 1면을 장식하게 됐다.
기자들의 상상력과 착안점이 엇비슷하다 보니 신년호 사진을 찍다 보면 현장에서 타 신문사 기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12년 전 말의 해였던 2002년을 앞두고도 전국의 유명한 말 목장이 사진기자들로 북적였다. 올해는 한국마사회가 촬영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마사회의 주선으로 작년 12월 12일과 13일 제주 경마목장에 여러 매체의 사진기자들이 모였다.
눈과 귀가 예민한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말이 누워서 자지만 누워 자는 것을 사람들이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은 작은 인기척에도 곧바로 일어나버리는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빛과 말을 한꺼번에 사진에 담으려면 말이 뛰노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명의 기자가 달려들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다. 현장에 모인 기자들은 각자 몇몇 장소로 흩어져 찍은 뒤 완성된 사진을 풀(pool·공유)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본보 기자는 리모트 촬영 장비를 가지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말들이 역광을 받으며 질주하는 본보 1면의 말갈기 사진은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에서는 사진 출처 표시에 대한 원칙 준수가 철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동취재에 참여했다가 타사 기자가 찍은 사진을 제공받은 경우 해당 사진엔 ‘공동취재단’으로 출처를 표시하는 게 원칙인데, 언론계 일각에는 자사 기자 이름을 쓰는 걸 당연시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진기자들 나름의 고충이 있더라도 같은 각도의 사진이 다른 매체에 중복 게재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새해에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 낡은 관행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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