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조석래 현재현의 추락

  •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민간 경제외교에 힘을 보탰다. 평소 한국의 주요 일간지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신문까지 꼼꼼히 읽은 뒤 세계의 흐름을 임직원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학력, 경력, 글로벌 감각에서 한국 재계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법학,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검사 생활을 하다가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맏사위가 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경기고 선배인 조 회장에 이어 2009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재계에서 ‘엘리트 기업총수’로 꼽히던 조 회장의 효성과 현 회장의 동양에 대해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효성은 탈세와 횡령 혐의, 동양은 부적절한 기업어음(CP) 발행과 계열사 간 자금거래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회사와 함께 두 사람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출국금지 조치까지 취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여기에서는 조석래 현재현 회장의 불법행위 관여를 기정사실로 단정하진 않겠다. 쏟아지는 언론 보도 중에는 실체적 진실과 동떨어진 내용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이 두 그룹에 대한 사전 조사를 거쳐 검찰에 고발한 사안인 데다 검찰의 수사 강도까지 감안하면 상당수의 경영진 소환과 사법처리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20년 가까이 투명 경영과 윤리 경영을 강조했다. 효성과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기업 관련 범죄들은 겉과 안이 다른, 기업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누구 못지않게 ‘합리적 국제통(通) 기업인’ 이미지가 강했던 조석래 현재현 두 회장의 추락은 분노, 서글픔, 안타까움의 복합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재산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사회적 평균치를 넘는 혜택을 입은 사람은 ‘당연히 누릴 권리’가 아니라 ‘바르게 써야 할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식이나 학력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인에게 고위 공직자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명백하게 법을 어겼거나 투자자들을 속였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현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엎드려 사죄한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우리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는 인식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책감사인지, 기업감사인지 헷갈리는 국회의 막무가내식 국정감사 같은 정치와 행정의 ‘갑(甲)질 횡포’에도 신물이 난다. 그러나 수사의 칼날만 대면 비리가 드러나는 상당수 기업 현실이 이런 구태(舊態)를 존속시키고 반기업 정서를 키우는 한 요인인 것도 사실이다. 기업 수사가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그런 이유로 기업인의 불법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효성과 동양을 수사하는 검찰 쪽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파헤치되 자칫 수사팀의 공명심 때문에 혐의를 침소봉대하거나 무리한 수사를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기업인이라고 특별 대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수사 과정에서 인간적 모멸감까지 주려는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법 앞에서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못지않게 유전유죄(有錢有罪) 식의 선입견도 금물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조석래#효성그룹#현재현#동양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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