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는 작은 흐름을 가리지 않아 수량의 풍부함을 이룰 수 있다.”(한비자, ‘대체·大體’편) “탁월한 지도자는 감싸 안아야 할 어떠한 존재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하늘 아래 그릇이 될 수 있다.”(묵자, ‘친사·親士’편)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밑거름이 된 포용의 경세 철학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베이징대 경제학과 샤예량(夏業良) 교수가 빠르면 다음 주 끝내 해임될 것이라는 뉴욕타임스(NYT) 최근 보도를 접하고 떠오른 구절들이다. 샤 교수 해임 문제는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지식인에 대한 통제 강도를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명문 여대인 웰슬리칼리지의 교수 130여 명은 9월 3일 베이징대 총장과 경제학원(단과대학)장, 그리고 대학 당서기 앞으로 공개 서한을 보내 샤 교수를 해임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샤 교수가 학문적 활동과는 무관한 오직 정치적 이유로 쫓겨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몹시 침울해 있다”며 “끝내 샤 교수를 축출하면 베이징대와의 학문 교류 파트너십 재고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웰슬리칼리지는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모교로 올해 6월 베이징대와 학생 교수 교류 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샤 교수는 2008년 류샤오보(劉曉波·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와 함께 303명이 서명해 중국의 민주화와 공산당 개혁을 요구한 ‘08 헌장’의 작성과 발표를 주도하는 등 사회 정치 개혁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샤 교수는 그동안 “빈부격차는 커지는데 권력자가 더 치부하는 중국 정치는 학정(虐政)이다” “공산당 중앙선전부 활동은 나치에 비유할 만하다” 등 잇단 비판으로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난달에는 “중국이 언론과 사상 통제에서 문화혁명 시대로 복귀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08 헌장’ 발표 이후 감시가 심해지자 2011년부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등 미국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올해는 9월까지 웰슬리칼리지와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등에서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미 체류 기간에도 인터넷에 지속적으로 사회 정치 개혁 관련 글을 올리자 중국 정부가 그를 귀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축출은 경제학과 교수들의 투표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NYT는 “교수 투표는 그의 처벌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feint)”라고 꼬집고 “베이징대가 미국의 스탠퍼드대 예일대 코넬대, 영국의 런던정경대(LSE) 등 유명 대학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에 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샤 교수는 왜 최고 명문대 교수라는 안정적 지위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면서도 소신 발언을 계속하는 것일까.
기자는 2009년 그가 블로그에 ‘학정’ 발언을 올렸을 때, 또 2010년 류샤오보가 노벨상 수상 이후 반 가택연금 상태에 처했을 때 베이징 자택을 찾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당시 “베이징대 사람이 일어서지 않으면 중국에 희망이 없다” “가능하면 평생 베이징대 교수로 일하고 싶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역사상 많은 변혁은 누군가의 희생을 불렀다”고 말한 걸 또렷이 기억한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선 중국이 부디 샤 교수를 품어 다시 한 번 세류(細流)를 모아 큰 바다가 되어가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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