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꽃잎을 어떻게 접어야 꽃 필 때 다치지 않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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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이해인 수녀는 엄마가 씨를 뿌린 분꽃에서 ‘많은 꽃이 피던 날/오래오래 생각했다’. ‘고 딱딱한 작은 씨알 속에서/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 꽃잎들이/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는지’ 궁금했다. 이경림 시인은 채마밭을 가꾸면서 씨가 작을수록 싹이 늦게 나는 것을 보고 ‘그 속에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깃발들을 펼쳐 드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한다.

하느님은 씨앗 속에 생명을 어떤 형태로 넣어 두었을까? 그 모양 그대로 오밀조밀 줄여 놓았을까, 꼬깃꼬깃 접어 놓았을까, 자글자글 녹여 부었을까?

생명의 유전물질을 담고 있는 염색체는 핵산(DNA, RNA)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단백질과 RNA는 외가닥의 긴 선이고, DNA는 두 가닥의 나선이다. 핵산과 단백질은 꼬이거나 감기거나 접힌 형태로 세포 속에 들어 있다. 꼬거나 감는 것도 접는 방식의 일종이라면 생명은 핵산과 단백질을 세포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씨앗 속에 ‘접어 넣었다가 펼치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만, 사물을 접었다가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접었다 펴는 접이식 제품이 참 많다. 빨대, 냅킨, 우산, 의자, 밥상, 주머니칼, 부채, 병풍, 텐트, 유모차, 자전거까지. 따지고 보면 지붕을 접고 펴는 컨버터블 승용차나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 넣었다가 빼는 랜딩기어도 접이식이다. ‘트랜스포머’ 같은 변신 로봇은 접이식 제품에 대한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종이접기는 2차원의 재료(종이)를 접어 3차원의 형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종이 한 장을 오리거나 붙이지 않고, 접어서 형상을 완성해야 한다. 일본 도쿄대의 미우라 고료 교수는 마루와 골이 번갈아 나타나도록 가로 세로로 주름을 접어 크기를 줄이는 ‘미우라 접기’를 개발했다. 이 방식은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안테나와 태양전지판을 펼치는 데 적용됐다. 미국의 로버트 랭 박사는 가상으로 종이를 접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자동차 에어백을 접는 방식과 우주망원경을 우주에서 펼치는 방식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DNA를 접어 원하는 형태와 기능을 구현하는 ‘DNA 오리가미(折紙·종이접기)’ 기술까지 등장했다.

한국종이접기협회가 주최한 제4회 코리아 종이접기 컨벤션이 최근 서울 영등포에서 열렸다. 해외 초대작가로 참석한 버니 페이턴 박사는 곰을 비롯한 여러 동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곰을 접는 방식은 10가지가 넘는다. 한평생 곰을 쫓아다니며 생태를 연구한 과학자의 곰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한 쌍의 ‘곰발바닥’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덩그러니 발바닥만 남은 곰의 안타깝고 슬픈 사연을 짐작하게 해준다. 종이접기가 취미에서 과학으로 발전하고 예술로 승화하는 순간이다.

새로운 종(種)을 탄생시키는 ‘과학자 하느님’은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꽃잎을 어떻게 접어 넣으면 꽃이 필 때 꽃잎끼리 서로 다치지 않을까? 날개를 어떻게 접어 넣으면 매미가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쉽게 펼칠 수 있을까? 고깔은 반듯한 모시 헝겊을 이등변삼각형으로 마주 접고 아랫부분을 접어 올린 뒤 마주 꺾어 펼쳐 만든 모자다. 정사각형과 직사각형과 이등변삼각형이 어울린 아름다운 기하학의 산물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승무’를 추는 여승의 고깔을 접어 나비를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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