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도로 길이는 고속도로와 지방 국도까지 포함해 총 10만5000km에 달한다. 교량은 2만9000여 개가 있다. 도로와 교량은 수천 조 원에 달하는 국가자산인데 이 시설들을 안전하게, 또 제 수명을 다하도록 사후 관리를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다.
우리나라가 2012년 도로와 교량을 고치는 데 쓴 돈은 약 2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도로유지 보수비용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시설 수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도로를 주행하는 대형 차량들이다.
이런 대형 차량과 관련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국가들은 도로법과 자동차관리법을 통해 차량의 총중량과 축(軸)하중을 제한하고 있다. 총중량은 다리 사후관리를 위해, 축하중은 포장도로의 사후관리를 위해 필요하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일정한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특히 미국 도로교통협회(AASHTO) 기준을 참조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차량 총중량과 차량 축하중 운행제한 규정이 국제기준과 비교해 매우 허술하다는 점이다. 대형 차량 축하중 규정이 국제기준보다 평균적으로 2t 이상을 초과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도로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 대만, 중국, 유럽, 호주, 미국 규정을 분석해보면 어떤 경우라도 교량이나 포장도로 설계 기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공식을 사용해 기준을 만든다. 차량 총중량도 차량길이와 축의 수에 따라 차등해 계산하고, 축하중도 축의 구조나 기능에 따라 도출해낸다. 결과적으로 차량 평균축하중이 도로포장 하중 설계기준인 등가단축하중(ESAL) 8.1t을 초과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규정이 국제기준과 일치된다면 도로유지 보수비용과 관련된 국가예산이 연간 약 1조 원 이상 절감될 것이다. 또한 도로 파손 때문에 일어나는 교통사고 위험도 훨씬 감소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미 2005년 국회공청회를 거쳐 이후에 의원 입법안까지 제출된 적도 있지만 흐지부지됐다. 국토부 역시 이 문제와 관련해 연구용역도 실시했다. 연구용역 보고서 역시 문제점에 동의하고 개정 방향까지 제안했다.
현재 외국에서는 차량의 축하중은 더 낮추고 차량의 길이가 충분히 긴 경우는 총중량을 더 늘려 도로와 교량에 주는 스트레스 양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국가의 물류경쟁력을 높이면서 도로도 보호하는 것이다.
도로가 망가지고, 매년 예산이 허비되는 데도 정부는 6년이 넘도록 관련 법 개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빨리 국제기준에 맞춰 우리나라도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갖추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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