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한중 간 이교난심(易交難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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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2010년 한중일 정상회의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뒤 제주에서 열렸다. 한국은 그때도 중국의 역할에 기대했다. 그러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북한의 소행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원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견책(譴責)한다”고 말했다. 견책은 매섭게 꾸짖는다는 뜻이다. 다만 북한을 지목한 건지, 한국까지 싸잡아 말하는 건지 모호하다. 정황으로 보면 후자다. 당시 회의에 배석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국의 관심은 한반도가 별일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천안함 때문에 미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기동하는 것은 악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이 끝났다. 한중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에서는 뭔가 허전하다. ‘미래비전 공동성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주체는 ‘한국’이다.

이번에 ‘양측’이 합의한 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 안정 유지가 공동 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까지 모두 거론한 것인지 역시 모호하다.

중국은 ‘북핵 불용’이라는 표현을 공동 서명에 못 넣겠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문서가 아닌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 핵 보유는 용인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언급으로 대신했다. 그것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닌 박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다. 이번에도 중국 언론은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느 누구의 행위도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3년 전 제주에서 원 총리가 한 발언과 별 차이가 없다.

우리가 신뢰를 말할 때 중국은 꼼꼼하고 이기적으로 국가이익을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장에 나선 것도 어찌 보면 중국의 이런 태도 때문이다. 중국이 1992년 한국과 수교한 것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중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양자 적극외교 차원에서 추진됐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92년 4월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수교를 2, 3년만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북-미, 북-일 수교와 속도를 맞춰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해 7월 묘향산 별장에서 김 주석을 만난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한중 수교를 통보했다. 그러자 김 주석은 “우리는 자주노선을 걷겠다. 중국이 하는 일은 중국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라고 말했다. 북한은 1년 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중국은 남북을 놓고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왔다. 북핵을 수용할 수 없으면서도 북한을 내치지 않는 것은 혹여 중국을 버리고 미국과 붙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직역될 수는 없다. 그 대신 한국이 주도적으로 미국 변수를 처리하면 통일에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에서 ‘자주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들린다.

이교난심(易交難深)이라고 했다. 사귀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심신지려(心信之旅)’ 외교가 큰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김 주석이 한중 수교 1년 전인 1991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방중해 환대를 받은 곳도 박 대통령이 묵은 댜오위타이(釣魚臺) 18호각이었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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