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범죄 친고죄 폐지, 2차 피해 방지에 신경 써야

  • 동아일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내일부터 크게 강화된다. 강간과 강제추행,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등 모든 성범죄에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사라진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범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다. 친고죄 폐지에 따라 경찰의 인지(認知) 수사나 제3자의 고발로도 성범죄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형법 제정 60여 년 만의 획기적인 변화다.

지금까지 성인에 대한 강간과 강제추행 등은 친고죄였고, 아동 청소년에 대한 추행과 음란행위는 반의사불벌죄였다. 성범죄자들은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처벌을 원치 않으면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성범죄자들이 피해자와 무리하게 합의를 시도하면서 피해자 신상공개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합의금을 내고 처벌을 안 받을 땐 유전무죄 논란도 일었다. 친고제 폐지는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예상된다. 얼마 전 ‘성추문 검사’ 사건에서 보듯 피해자의 사진이 검찰에 의해 외부로 유출되기도 했고 피해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성적 모욕을 당한 사례도 많았다. 친고죄 폐지 이후 검경이 피해자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면서 수사를 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 걱정이다. 박근혜정부가 내건 ‘4대악 근절’ 가운데 성폭력도 포함돼 있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벌써 실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친고죄가 폐지되면 실적 올리기식 수사를 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

성인 강간죄의 피해자에 남성을 포함시킨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 청소년,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에만 적용했던 공소시효 폐지를 강제추행까지 확대하고, 음주나 약물 탓이라며 형을 감경(減輕)해 주는 규정을 없앤 것은 조두순 사건 등에서 확인된 성범죄 처벌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법률 미비 때문에 성범죄가 빈발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약하지도 않다. 문제는 음주로 인한 범죄나 성범죄에 대해서 “한 번 실수는 용서해 줘야 한다”는 그릇된 사회 분위기와 법원의 관대한 판결이었다. 사법부도 이제 성범죄의 엄단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성범죄는 재범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영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은 강간죄로 징역형을 살고 만기 출소한 후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형 집행 이후라도 경찰이 지속적으로 보호 관찰을 하고 성범죄자에 대한 관리와 신상 공개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다. 자기 통제를 못하는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치료와 교육을 통해 재범을 막아야 한다. 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법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엄정한 법 집행이 곧 범죄 예방이다.
#성범죄#처벌#친고죄#반의사불벌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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