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CJ 회장 옆집 장충동 경비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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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CJ가 저렇게 당하는 건 보호막이 되어줄 우군이 없어서다.”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뒤, 세상 돌아가는 속사정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들의 해설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CJ는 메이저 언론과 불편한 관계다. 케이블 TV 업계의 공룡인 CJ는 종합편성 채널을 갖고 있는 메이저 신문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사들과도 이해관계가 대립한다. 검찰로선 새 정부 첫 대규모 사정(司正)의 사냥감으로 CJ만큼 적당한 상대가 없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회부원들로서는 수긍키 어려운 해석이다. 필자를 포함해 부원 누구도 CJ와 그 어떤 이해관계나 호오의 감정이 있을 게 없다. 동아일보 종편채널인 채널A와 CJ 간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필자에게 귀띔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아일보 법조팀이 CJ 비리 의혹을 취재해 온 것은 종편 출범 훨씬 이전부터였다.

검찰이 이런저런 여건을 감안해 CJ를 타깃으로 정했다는 해석도 사실과 다르다. CJ 수사는 새 정부 들어 기획으로 준비했다기보다는, 칼집의 봉인이 이제야 풀렸다고 보는 게 맞다.

CJ 수사는 2007년 5월 CJ 전 재무팀장의 청부폭력 사건으로 거슬러 간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USB를 확보했고, 검찰이 2008년 복원한 USB 파일 속에는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과 재산 도피 의혹을 뒷받침하는 편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까지는 근 5년이 걸렸다. 지난해에도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준비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의 동문 검찰 고위 간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현재 검찰이 풀어내는 보따리 속 내용물의 상당수가 이미 과거 내사 때 확보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은 준비돼 있는 상태였다.

이번 CJ 사건은 한국 재벌비리사의 낡은 페이지를 마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피해를 입히거나, 파렴치한 경제범죄를 저질러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대주주로서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 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잠시 감옥에 갔다 나오면 다시 ‘나라님’(임금·CJ 전 재무팀장이 이 회장을 호칭한 표현)처럼 거대 그룹을 호령하는 관행은 끝내야 한다.

과거에 기업에 대해 사정의 칼날이 몰아치면 재계와 정치권 등에서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지만 이번엔 그런 역풍이 거의 불지 않는다. CJ가 힘센 집단에 우군이 없어서일까? 채널A 기자의 가슴 찡한 특종기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듯싶다.

사회부 최석호 기자는 검찰 압수수색 직후 장충동 이 회장의 집을 찾아갔다.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70대 초반 경비원 A 씨에게 아침 상황 CCTV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A 씨는 거절했지만 세 번이나 찾아와서 공손하게 부탁하는 최 기자에게 결국 CCTV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 속에는 압수수색 수시간 전에 CJ경영연구소 직원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자료를 빼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최 기자는 이 장면을 휴대전화에 담았고 채널A 뉴스에 특종 보도됐다.

며칠 후 A 씨가 사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 기자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A 씨를 찾아갔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최 기자에게 A 씨는 “동네 빵집까지 다 뺏어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화면을 보여줬다. 내가 도의상 사직한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최 기자를 껴안아주며 “나는 괜찮다. 너는 돈 먹지 말고 기자생활해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필자는 그 경비원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인 동시에 ‘작은 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은 아무리 장사에 능한 기업이라도 세상의 인심을 잃으면 장기적인 번성과 발전은 기약하기 힘듦을 경종처럼 알려준다. CJ가 저렇게 난타당하는 건 언론이나 검찰에 우군이 없어서가 아니라, 골목민심이라는 천심을 잃어서가 아닐까.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CJ그룹#비리#검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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