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송평인]美 카피올라니대 존 스위니 종교학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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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종교는 약화돼도 종교를 보충할 유사경험은 늘어난다”

존 스위니 교수는 종교의 앞날에 대해 “과학기술 시대에 신에 대한 믿음은 쇠퇴하겠지만 종교의 본질적 기능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존 스위니 교수는 종교의 앞날에 대해 “과학기술 시대에 신에 대한 믿음은 쇠퇴하겠지만 종교의 본질적 기능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존 스위니 미국 하와이 주 카피올라니대 종교학 교수(36)는 헬릭스라는 이름의 다국적 기업이 최근 내놓은 흥미로운 신상품이라며 알약 하나를 권했다. 일종의 ‘신 유전자 영양제(God Gene Supplement)’.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 뇌에서 영성(靈性)을 주관하는 부위가 밝혀졌고 그 부위를 자극해 인간을 보다 영적으로 만드는 약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이 약도 그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호기심에 그가 준 약을 먹었으나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위약(僞藥·심리적 효과를 위한 가짜 약)이었다.

“사실 헬릭스라는 회사는 세상에 없다. 당신이 먹은 것은 ‘틱택’이라는 입 냄새 제거용 민트향 사탕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이 음악을 들을 때나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느낄 때 작동되는 뇌 부위가 영성을 주관하는 부위와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음악 없이 영성을 느끼고 싶다면 이런 알약을 복용하는 시대가 미래에 올지도 모른다.”

종교는 인류 최초의 미디어다

스위니 교수가 속한 하와이대 마노아 미래학파의 신조 중 하나는 ‘미래에 실현되는 것은 모두 처음에는 우스워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운 것이 모두 미래에 실현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안스로포신(anthropocene) 시기 종교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지질학에서 흔히 빙하기 이후를 홀로신(holocene·홀로세)이라고 부르는데 1만 년 전부터 현세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최근 안스로포신이라는 새 용어가 만들어져 널리 쓰이고 있다. 홀로세의 상당 기간 인간은 환경에 지배당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영향은 지구의 생태 환경을 변화시킬 정도로 커졌다. 산업혁명 이후의 시기를 홀로세와 구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스로포신 시기의 종교적 상황을 정의한다면….

“물론 전통 종교의 약화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기독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급격하게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미래는 없다. 요즘도 종교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다른 것이 종교의 영역을 보충하고 있다. 오늘날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표현은 종교사적으로 봤을 때 최근에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에 쏟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페이스북에 쏟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교는 실재(實在)의 경험을 위한 매체(Religion as a medium for experiencing reality)로서 시작됐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TV나 인터넷이 전하는 실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TV나 인터넷을 매체라고 부른다. TV나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의, 인류가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는 시점에서는 종교가 매체의 역할을 했다. 종교는 최초의 매체였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획득된 정체성과 세계관을 가지고 인생을 조망했다. 오늘날 페이스북에서의 상호 교류가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종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만이 아니라 사후(死後) 세계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내용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페이스북에는 그런 차원이 없지 않은가.

“2010년 6월 뉴욕타임스에 ‘페이스북 이용자가 죽자 유령이 찾아왔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던 한 여성이 광고란에서 자신의 죽은 친구가 좋아하는 상품이라는 광고가 뜬 것을 보고 죽은 친구의 페이스북에 접속했더니 그곳에서 죽은 친구에게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주는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내용이다. 페이스북에서 죽은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동양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어느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사이버상에서의 죽을 권리에 대해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애완견들을 위한 묘지가 인간을 위한 묘지처럼 아름답게 조성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실 장례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제의(祭儀)가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제의다. 죽은 사람에게 특별한 작별 인사를 함으로써 산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애완견을 위한 묘지도 좋을 것이다. 미래에는 로봇을 위한 묘지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사람보다 훨씬 똑똑한 로봇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런 로봇은 애완견 이상으로 인간과 친밀해질 것이다.”

―알약 얘기로 돌아와서 알약을 먹고 영성이 증가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종교에는 개인을 넘어서는 집단적인 차원이 있다.

“애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최근 연구결과는 종교적 경험과 브랜드 충성도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애플의 추종자들은 십자가 대신 애플 로고를 새기고 다닌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네들끼리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다른 집단과 분리된 정체성을 얻으려 한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마치 예언자처럼 묘사한다. 잡스가 죽었을 때 종교지도자가 죽은 것 같은 추모의 물결이 있었다. 애플의 신도들은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들고 촛불이 그려진 앱을 내려받아 화상으로 추모하면서 서로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을 얻으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죽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엔 로봇 묘지도 생겨날지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전 이외에 안스로포신 시기 종교의 미래를 결정할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기후변화가 될 것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선보인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2020년을 가상한 늙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합니다. 그때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담았다. 종말론적 상상과 결부된 기후변화에 대한 신념은 종교적 신념처럼 도덕적 윤리적 원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스위니 교수는 몇 년 전 실제 있었던 영국인 팀 니컬슨 씨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모든 영역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신념을 관철시키려 했다. 그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만을 타고,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었다. 그는 회사가 요구하는 출장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신념을 고집하다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부여하는 것과 비슷한 권리를 그에게 부여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신념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 목걸이를 단 승무원이나 히잡을 쓴 여학생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

―종교 간 갈등은 사라질 것인가.

“종교 간 갈등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오늘날 이슬람과 기독교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이슬람을 공격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가 대체로 그렇지만 아직도 하나의 종교만을 허용하는 나라가 많다. 그러나 페이스북 같은 하이퍼 매체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통신의 힘을 크게 빌린 ‘아랍의 봄’은 민주화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 민주화를 통해 종교 다원주의의 길도 열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할 위기 상황도 종교 간 협조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와이에서
▼ 앨빈 토플러와는 다르게 ‘미래는 예측될 수 없다’는 명제에서 출발 ▼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가 창시한 마노아학파


짐 데이터 교수. 동아일보DB
짐 데이터 교수. 동아일보DB
미국 하와이대를 중심으로 한 미래학자들을 마노아 학파라고 부른다. 하와이대가 오아후 섬 마노아 지역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노아 학파의 창시자는 하와이대 정치학과 짐 데이터 교수다. 그는 40여 년 전부터 하와이대에서 미래학을 가르쳤고, 그에게 배운 학생 수백 명이 각 분야의 미래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노아 학파의 미래학은 앨빈 토플러 식 미래학과는 많이 다르다. 마노아 학파는 ‘미래는 예측될 수 없다’는 것을 제1명제로 삼고 있다. 이 학파는 ‘예측된 미래(predicted future)’가 아니라 ‘선호된 미래들(prefered futures)’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미래에 대한 독점적 관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열린 미래를 보장하려는 것이 이 학파의 특징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선호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노아 학파의 또 다른 특징은 기업과 같은 사적 부문보다는 정부 등 공공 부문을 위한 컨설팅을 주로 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토플러 등 한국에 그동안 주로 소개된 미래학자들과 다르다. 데이터 교수가 1970년대 하와이대에 초빙된 것은 당시 하와이 주정부가 추진한 ‘하와이 2000년’이라는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마노아 학파는 정부와 도서관, 종교의 미래 등 경제 분야 이외의 것도 다루고 있다.

마노아 학파는 토플러 식의 저널리스틱한 미래 연구와는 달리 학문적 방식으로 미래를 다루려고 한다. 마노아 학파는 미래 시나리오를 크게 4가지로 구별한다. 발전 모델, 붕괴 모델, 내핍 모델, 초월 모델이 그것이다. 발전 모델은 유토피아, 붕괴 모델은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발전도 붕괴도 아닌 내핍이나 초월 모델도 있다. 가령 화석연료 고갈이라는 위기에 대응해 신재생에너지를 적시에 개발해 에너지 소비량을 계속 늘려 갈 수 있다면 발전 모델이 될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개발하지 못했는데 미처 에너지 소비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면 붕괴 모델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에너지를 더 적게 쓰는 시대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것이 내핍 모델이다. 초월 모델은 상상하긴 어렵지만 에너지가 거의 의미를 갖지 않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말한다.

호놀룰루=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존 스위니 종교학 교수#마노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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