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취임 후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으나 정작 참모 서열 2위이자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어제 긴급 차관회의를 소집해 국정을 챙겼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아직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다 1명의 장관도 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을 개편하는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의 장관 후보자와 야당이 인사청문회조차 거부한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언제 새 정부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1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도, 조각(組閣)도 늦었다. 검증 부실로 첫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바람에 일이 더 꼬였다. 정치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정부조직 개편 같은 중차대한 사안은 하루라도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여야가 협상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하지만 여야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도 서로 오기를 부리며 며칠씩 뜸을 들였다.
정부조직 개편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것은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 속해 있는 일부 방송 업무를 신설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문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창조경제’를 선도하려면 방송의 진흥 관련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통합당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지키려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맞선다.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부를 작동불능 상태로 방치해 놓을 만큼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쟁점인지는 의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어떨까. 여당의 주장처럼 방송 관련 일부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기지 않으면 과연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불가능한가. 반대로 만약 옮긴다면 야당이 우려하는 것처럼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가.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절충해 서로가 희망하는 것은 취하고, 우려하는 것은 보완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마련해 결론을 내는 게 협상의 기본이다. 서로가 마주보는 기관차처럼 달린다면 나라꼴은 뭐가 되겠는가.
5일이면 2월 임시국회가 끝난다. 새로 국회를 열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엄중한 안보 경제 상황을 감안한다면 하루가 급하다. 마침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어제 ‘여야 대표-의장단 연석회의’를 제의했으니 희망은 걸어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2월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에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박 대통령도 여야에만 맡겨 놓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해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