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66>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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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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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노래
―김소월(1902∼1934)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김소월의 시들은 그 자체가 노래다. ‘7.5조 민요풍의 리듬’에 실려서만이 아니라, 맑고 고운 시어로 빚어내는 그립고 서러운 정조가 노래의 근간인 독자의 가슴속 그리움이나 설움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김소월의 시들은 다정다감하지만, 시인의 내면 깊숙이 치유할 수 없는 금이 가 있는 듯 슬프고 쓸쓸하고 때로 허무하기 일쑤인데, ‘님의 노래’는 마치 콧노래처럼 유유하고 포스근하다.

화자는 김소월 자신이거나 시인 일반이다. 님은 뮤즈, 말하자면 영감이다. 시라는 건 지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오는 것, 즉 뮤즈의 노래를 받아 적는 것. 화자의 주변에는 뮤즈가 들려주는 노래가 들린다. ‘포스근히’ 잠들도록 화자는 그 노랫가락에 휘감겨 있다. 그런데 잠이 깨면 그 노래, 남김없이 잃어버리고 잊어버린다. 즉 어느 순간 시심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그저 시인의 다반사를 읊은 것뿐인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가슴에 낭랑히 저미어든다. 소월, 당신이 바로 우리 님이다! 당신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내 가슴을 젖게 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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