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박근혜 예비후보’와 편집·보도국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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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5일 2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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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요즘 시론(時論)을 써서 신문사에 보내오는 교수 지식인 전문가들이 부쩍 늘었다. 내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나 새 정부에 바라는 요망의 글이 많다.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참여의식과 표현욕구가 보태졌겠지만, 18대 대통령 정부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충정(衷情)이 느껴진다. 박 당선인이 일독을 했으면 싶은 원고들을 보다가 문득 5년 8개월 전의 일이 생각났다.

2007년 6월 1일 박근혜 한나라당 17대 대통령 예비후보는 제주에서 전국 신문·방송 편집·보도국장 31명을 상대로 두 시간 동안 ‘대선주자 언론정책’을 밝혔다. 마침 나는 사회자로 박 후보 옆자리에 앉아 질의응답을 거들었다. 이날 박 후보는 언론문제 말고도 국정에 관한 소신을 밝혔는데, 떠올려보니 신기하게도 요즘 오피니언 리더들이 주문하는 내용과 많이 겹친다. 그러니까 유식자들이 새삼 쓴소리를 안 해도 이미 박 당선인은 웬만한 국정원칙은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뜻이다. 당시의 박 후보 어록을 꺼내 몇 부분 소개해볼까 한다(문법을 떠나 발언 그대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국권을 수호하는 것인데, 진짜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까. 정말 국권을 수호하고, 최고의 능력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서 적재적소에 나랏일을 잘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국가지도자는 무엇보다도 관(觀)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력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전반에 걸쳐서 자유를 확대해야 합니다. 과거 60∼70년대 우리나라는 한정된 자본과 인력, 기술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국가발전을 주도했고 그때는 그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할수록 부작용만 심해질 뿐입니다. 이제는 기업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에 자유를 주고….”

“제가 지향하는 나라는 선진국이라고 그랬고, 원칙과 상식이 선 나라라고 그랬습니다. …. 그리고 세무조사라는 것은 정말 남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세청 문제도 시스템으로 부정부패를 막고, 이런 남용을 막기 위해 어떤 시스템으로 해야 된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쓸데없는 위원회가 있고, 이것을 줄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옥상옥(屋上屋)으로 책임 있는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그 위원회 다 먹여 살려야 되니까 우리 주머니 세금이 더 많이 나가고, 규제가 더 많아진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저는, 가능한, 우리 미래형 정부는, 정말 꼭 해야 되고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일로 한정해서, 그 대신 그것만은 아주 강력하게 법질서와 공권력을 엄정하게 지키도록, 자기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서 작지만 효율적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박 후보의 말을 들으면서,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시장론자인 나는 언론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주제였던 언론정책에 대해 박 후보는 더욱 명쾌하게 생각을 밝혔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폐쇄, 브리핑룸 통폐합 등으로 언론에 대한 취재 제한을 진두지휘하던 때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21세기 개명 천지에 아직도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의 숨을 죽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나라의 수치입니다. 저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자유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 국민으로부터 정보를 가리려고 하는 발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취재의 자유 없이 어떻게 정부의 부정부패와 밀실행정을 감시하고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공기업 감사들이 남미 이구아수 폭포까지 가서 혁신 세미나를 하겠다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사실이 브리핑으로 밝혀진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각종 예산 낭비와 부패 사건들 역시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 없이는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 입맛에 맞는 정보와 자료만을 받아 적어서 보도하라는 지금의 브리핑 제도로도 모자라 아예 브리핑룸까지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취재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근본적으로 봉쇄하겠다는 것입니다. ….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무력화시키려는 이 정권의 음모는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언론의 소중한 가치를 진정으로 고귀하게 여기는 국가지도자가 되겠습니다.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 속에서 국민들이 올바른 주권을 행사하고,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 속에서 정부의 책임성을 높여가겠습니다. 언론의 비판이 당장은 아프더라도 이를 경청할 때 더욱 좋은 정부가 되고 국가발전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취재활동을 오히려 지원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2007년 그날 박 후보는 “언론이 궁금해하는 것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신문·방송의 야전 사령관인 편집·보도국장 31명은 대화를 마치면서 박 후보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은 이제 실행으로 박수 받을 시간 앞에 섰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박근혜 예비후보#편집장#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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