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광기]美 총기사건의 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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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총기규제 대책을 발표했지만 건국 이래 총기 소지를 법적으로 허용했던 미국만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최근 총격사건 이후 오히려 총기 구매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동안에는 쉽게 보이지 않던 총격사건들이 왜 하필 최근 들어 그렇게 빈번히, 그것도 가장 끔찍한 형태로 발생할까. 필자가 볼 때 최근 총격사건의 급증과 흉포화는 미국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인종-종교 테러 부른 집단주의

우선 개인의 취향이나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사회로 알려져 있는 미국이 서서히 집단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빚기도 한다. 현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 현상이 대표적이다.

2010년 매사추세츠 주 한 여학생이 아일랜드 억양이 섞인 영어를 쓴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을 당해 자살했다. 그해 급증한 왕따 현상을 두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교육부가 대책회의를 열었을 정도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어 인종과 종교에 기반한 증오범죄 및 미국에선 흔치 않았던 일가족 동반자살 증가까지 부르고 있다.

여기에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경제위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의하면 2011년 18∼24세의 청년실업률은 16%로 1948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부분이 등록금 융자를 받은 상태로 실업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와 동거를 한다.

이들은 ‘어른 애(adult children)’라고 불리는데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어른 애’는 2010년 현재 총 1580만 명으로 2007년 경제위기 이후 120만 명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내 갈등이 불거질 확률은 더없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가 주장한 대로 감정몰입이 높은 곳에서의 갈등이 더 강렬한 것이 사실이라면 가족은 그런 갈등이 불거질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된 최근 샌디훅 초등학교 총격사건의 범인도 스무 살이 넘었음에도 모친과 함께 살았고,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신을 정신치료 목적으로 요양원에 보내려던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좌절감과 분노가 팽배하다. 모두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수면 위로 불거진 것들이다. 16%대의 높은 실질실업률, 덩달아 상승 중인 16.1%의 빈곤율,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증발한 순자산가치, 무엇보다 삶이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제난에 분노-좌절감 팽배

이런 사실을 일반 서민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이 피부로 직접 접하는 것은 고공행진 중인 월세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작년 10월 현재 미국의 월평균 임대료는 1년 전에 비해 3.7% 증가했다. 이는 가처분소득에서 상당량을 임대료와 부채상환 등에 지불해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소비 여력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고, 특히나 저소득층에겐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물론 국민들에게 희망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총격사건이나 자신의 집에 불을 내고 그것을 진화하러 온 소방대원들을 조준 사격하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으로 바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연이어 발생하는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현재 미국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분노와 좌절이라는 이상기류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개연성도 현재로서는 부인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미국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오바마#총기규제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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