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대선 복지 공약, 지속 불가능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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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대선후보들의 복지정책이 계속 발표되고 있지만 국민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선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이 대부분 총선 때 공약을 재탕하고 있고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도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약이 설사 실현된다 해도 국민들의 팍팍하고 무거운 삶의 현실을 윤택하고 가볍게 만들어 줄 성싶지도 않다.

재원 조달방안 없는 퍼주기 경쟁

박근혜 후보의 대선 복지정책은 지난 총선 때 내세웠던 생애 주기 맞춤형 복지와 가족행복 5대 약속의 기본 틀 위에서 보육과 의료비 분야의 복지공약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지난 총선 때 내세웠던 무상이나 보편적 표현을 줄이는 대신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인 공약은 거의 동일하다. 안철수 후보는 노인과 장애인 부문을 대표 복지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노인빈곤 제로’와 같은 슬로건을 선보였다. 총괄적으로 보면 문 후보 복지공약이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작성돼 있고, 박 후보 복지공약은 생애주기라는 표현에 걸맞지 않게 다소 듬성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안 후보 공약은 아직은 초기 진행형으로 평가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구체적으로 박 후보는 암 등 중증 질환의 100% 국가 부담,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노인 임플란트의 건강보험 적용,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자 기준 대폭 완화 등 임팩트가 있는 공약을 포함하고 있다. 문 후보는 건강보험 입원진료비 보장률 90% 달성과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기초노령연금 및 장애인연금 두 배 인상, 아동수당 신설 및 공공 보육시설 대폭 확충 등과 같은 눈에 띄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안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두 배 인상 공약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 틀은 문 후보와 유사한 방향인 것으로 판단된다.

18대 대선 복지공약들은 17대 대선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고 강화됐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조성됐던 복지프레임이 복지 논쟁과 총선 과정을 거치면서 확대 재생산돼 이제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신정부의 핵심정책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화려한 수사나 구호에 묻혀 얼핏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복지정책의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 후보의 공약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재원의 조달 가능성이라는 근본적인 제약 요소 때문이다.

집권 후 나라 곳간 고려해야

박 후보는 향후 5년간 복지를 비롯한 공약의 실행을 위해 135조 원을, 문 후보의 경우는 174조 원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매년 각각 27조 원과 34조8000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3년 예상 국세수입 216조4000억 원의 10%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이를 모두 국세로 조달하자면 세율을 10% 이상 높여야 한다. 대선후보들은 세출 항목 조정, 탈세 방지 등 세원 확보, 조세감면 축소, 부자과세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부자과세로 조달할 수 있는 세액은 극히 제한적이고, 다른 재원 확보 방안 역시 현 정부를 비롯해 과거 정부도 늘 했지만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든 것들이다. 세금을 유발하는 복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국민을 의식해 제시한 재원조달 방안치고는 현실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따라서 복지확대 목표가 방대한 문 후보나 다소 중형급인 박 후보나 막상 집권하면 할 수 있는 복지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실제 집권하면 나라 곳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복지서비스 공급체계로는 예산을 아무리 투입해도 수급자가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용이했던 민간 중심 복지서비스 공급체계가 극심한 경쟁과 과도한 이익 추구 행위로 인해 공공기관이 직접 복지서비스를 공급할 때보다 서비스 질이 떨어져 이용자의 불만과 불편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제도를 설계할 때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따라서 어떤 대선후보가 당선이 되더라도 복지서비스 공급체계의 비용 효율성 제고를 위한 집권 후 ‘플랜 B’를 별도로 만들고 있어야 한다. 국회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서비스 공급자 단체로 인해 우리나라 복지모형의 성패가 갈릴 수도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가 투입되고 있는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서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2만 달러 국민소득과 12%에 불과한 노인인구 비율 등 복지수요를 감안하면 결코 적다 할 수 없는 규모다. 노인인구 비율이 40%에 이르게 되는 2050년대에도 지속가능한 복지시스템을 지금부터 제대로 설계해놓지 않으면 복지를 확대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다. 대선후보들의 복지 공약이 지속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어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yongha01@sch.ac.kr
#대선 복지 공약#복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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