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그제 “4년 중임제는 국민 공론이 모아져 있고 부통령제도 도입할 수 있다”며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가 이전에 제기했던 책임총리제보다는 정·부통령제 개헌 카드가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쪽에서는 야권 후보의 단일화 효과를 상쇄시키는 맞불작전으로 개헌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헌법은 국정 운영의 밑그림을 담은 종합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헌법을 대통령의 권력구조에만 연결하는 것은 단견(短見)이다. 만약 개헌을 하게 된다면 권력구조를 포함해 국정 운영의 틀을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로 짜는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덜컥 대국민 약속부터 할 일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서도 개헌은 시간적 내용적으로 충분히 검토됐다. 그러나 여야의 시각차에다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해 불발에 그쳤다.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 어느 쪽이나 제의할 수 있지만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문 후보와 박 후보가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더라도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공수표(空手票)가 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탄생했다. 당시 5년 단임제를 택한 것은 독재정권의 출현 가능성과 관권 개입을 차단하려는 취지가 강했다. 5년 단임제의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가 더 낫다고 확언하기도 어렵다. 4년 중임제가 되면 대통령이 임기 첫 4년간은 올바른 국정 운영보다는 재선을 더 의식할 게 뻔하고, 다음 4년간은 지금의 5년 단임제와 비슷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은 현행 헌법으로도 운영의 묘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헌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개헌을 논의하려면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까지 담아서 국민이 공감하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대선 정략(政略)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