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사립초의 ‘웃픈’ 사연

  • 동아일보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바야흐로 시즌이다. 일곱 살 자녀를 둔 엄마들의 귀가 팔랑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렇다. 사립초등학교 입학철이 돌아왔다. 서울 사립초는 29일부터 지원서를 받아 다음 달 5일 추첨한다. 초등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게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른다. 경찰 입회하에 추첨을 할 정도로 피 말리는 현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사립초 입학설명회에 다녀온 이들을 만났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웃픈(웃기면서도 왠지 슬픈)’ 사연이 쏟아졌다.

지난해 경쟁률이 제일 높았던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용하다는 점집을 수소문해 부적을 받았다. 추첨하는 날, 딸에게 입히려고 지난해 당첨된 아이의 속옷을 얻어 놓은 이도 있었다.

돈이 넘쳐 나서, 교육열이 남달라서 이렇게 사립초에 집착하는 걸까? 내가 만난 이들은 장삼이사(張三李四)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직장에 다닌다. 2년마다 오르는 전세금을 걱정한다. 대출이 많아 “우리 집은 부엌하고 화장실 빼고 전부 은행 몫”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도 언제부턴가 사립초가 큰 관심사가 됐다. 1년 학비는 400만∼800만 원. 교복 스쿨버스 특기적성활동 등 여러 비용을 합치면 어지간한 사립대 등록금만큼 든다는데도 말이다.

사립초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우선 공립초에 보내도 이것저것 사교육을 시키다 보면 돈이 더 든다고 한다. 반면 사립초는 늦은 오후까지 학교에서 예체능이나 외국어를 가르쳐 사교육비가 오히려 덜 든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맞벌이 부부의 이유는 이보다 절박하다. 백일도 안 된 핏덩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버텨온 워킹맘조차 직장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초등학교 입학이라고 한다. 어린이집은 종일반이라도 있건만,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부터 굶게 생겼으니 말이다.

일부 공립초는 입학식 직후 적응 기간이라며 한동안 오전에 학교를 마친다. 워킹맘 사이에선 공포의 대상이다. 급식과 교통 지도를 이유로 엄마를 찾는 학교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이 없어서 위장 전입까지 불사하며 아이를 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선배도 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면 코흘리개 아이가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봉고차에 실려 학원 뺑뺑이를 돌 판이다. 오후에 아이 봐 줄 도우미 비용보다 사립초 학비가 싸게 먹힌다는 게 사립초 추첨에 목숨을 거는 맞벌이 부부의 전언이다.

사립초는 제 아이만 남달리 키우려는 부자만 보내는 곳이라고 고깝게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하지만 얼마 전 경기도 공립초의 방과후학교 강사가 걸어 온 제보전화를 들어보면 이런 시선이 불편해진다. 방과후학교 때문에 잡일이 많다고 여기는 교장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강사들에게 폭언을 일삼는다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더욱이 방과후학교밖에 갈 곳이 없는 아이라면, 18대 대통령 재임 중에 초등학교 학부모가 될 필자도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결국 나도 사립초에 목숨 거는 ‘무의탁 워킹맘’이 되고 마는 걸까?

대선이 51일 남았다. 과거사와 단일화 공방 속에 허우적대는 대선후보들에게 동네 언니의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해결책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마음 놓고 공립초 학부모가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할 만한 정책이라도 내놓으라고. 제발.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사립초등학교#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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