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인사이드/김지영]‘강남스타일’에 ‘강남’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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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강남스타일’이 대세다. 유튜브 조회 2700만 건, 주말 서울 공연에 CNN, ABC, 로이터 같은 세계 외신들의 취재 경쟁 등 기존 K팝 아이돌과 다른 ‘반전(?) 외모’의 싸이가 해외에서 히트하는 건 분명 기현상이다.

그런데 나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뮤비)를 보면서 좀 어리둥절했다. 좋게 말해 ‘키치(통속 취미에 영합하는 예술 작품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고 꼬아 말해 ‘미아리(?) 스타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뮤비엔 강남이 없다. 우선 가사가 그렇다.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건 맛을 음미하는 것은 모르는 촌놈 스타일이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람은 강남 아니라도 어디나 있다. 유재석이 입은 노란 형광 슈트와 (색)깔맞춤 스카프, 문신 새긴 사우나 조폭, 관광버스에 탄 중년 남녀, 적삼 입고 장기 두는 노인도 강남 스타일은 아니다.

내게 이 노래는 오히려 강남 콤플렉스에 대한 야유로 읽힌다. ‘사는 곳이 어디냐’라는 질문이 계층 갈등적 언어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강남·강북이 교복 입는 스타일, 헤어스타일, 가방 메는 스타일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강남 스타일에 관해 ‘뭔가 다를 것’이란 강박을 갖고 있다. 그냥 다른 게 아니다. 강남은 무조건 세련되고 강북은 무조건 촌스럽다는 서열 의식이 깔려 있다. 만약 키 크고 마르고 잘생긴 아이돌이 “나는 강남스타일”이라고 노래했다면 누리꾼의 집중 포화를 받았으리라. 그런데 전혀 강남 스타일로 안 보이는(?) 가수가 대놓고 “오빤 강남스따일”이라면서 강남을 단번에 B급(?)으로 만들어 놓으니 다수의 열등감을 단번에 날려 주는 통쾌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더 고개를 갸웃했던 것은 노래에서만 보이는 이런 표면적 느낌 이전에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한 싸이였다. 싸이는 1977년생이다. 이른바 ‘강남 8학군’ 세대다.

2000년대 들어 강남 8학군이 깨지고 그 자리를 특목고가 대체했지만 199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강남 8학군’ 출신들은 그냥 세련된 게 아니라, 사회적 진골 같은 존재였다. 왜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냐고? 강남이란 구역 자체가 넓은 데다 진짜 부자는 강북에 있다는 말도 있으니 ‘강남’이라고 상위 1% 클래스(성골)는 아니지 않은가.

어떻든 상위 1%의 존재를 열등감 없이 인정하되 애써 따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면서 진골로서의 우월감은 몸에 딱 배어 있는 게 ‘강남 8학군’ 세대의 특징이다. 뮤비에서 유일한 진짜 강남은 강남 키드(초·중·고교를 강남에서 졸업한!) 싸이다.

강남이 없는 ‘강남스타일’을 자꾸 듣다 보면 ‘진짜 강남은 뭐지?’라는 의문이 떠오르면서 뮤비 안에서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싸이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루이뷔통 St, 구치 St, 프라다 St가 팔린다(St는 ‘스타일’의 준말로 ‘짝퉁’이란 뜻이다). 노래 ‘강남스타일’은 ‘강남’에 St를 붙였다는 점에서 자신들은 강남 짝퉁을 말하지 진짜 강남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건 또 뒤집어 말하면 강남 짝퉁에 대한 비웃음이 아닐까. 그리고 강남 St를 비웃을 수 있는 건 ‘진짜 강남’만이 가능하다.

촌스러운(?) 외모를 최대한 활용해 다수의 열등감을 날렸다면 싸이는 정말 영리한 가수다. 더 나아가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리얼(real) 강남 블러드(blood)’를 증명한다면 그는 정말 정교하고도 영리한 가수다.

어쨌든 내게는 “오빤 강남스따-일”이라는 노래 후렴구가 “너희가 (진짜) 강남을 아느냐”라는 말로 자꾸 들린다.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kimjy@donga.com
#대중문화 인사이드#대중음악#강남스타일#싸이#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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