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그제 유로존 경제대국인 독일의 신용등급(AAA)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스페인은 지방정부의 파산 사태로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인 중국의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4%에 그칠 수 있다는 중국은행 관계자의 발언도 나왔다. 실물 경제와 금융, 선진국과 신흥시장이 모두 침체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하는 엄혹한 상황이다. 위기의 진앙인 유럽과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난파선 같은 자국 경제를 수습하기에 바쁘다. 미국 대통령선거 레이스의 최대 쟁점도 일자리 경기회복 재정적자 같은 경제 현안이다.
우리 대선 주자들의 장밋빛 공약에서는 이런 절박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위기라는 단어를 쓰는 데는 인색하고 복지라는 단어에 너그럽다. 세계 경제의 위기 국면을 복지 공약을 내세우고 경제민주화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수사로 이용한다. 대선 주자들은 출마선언문에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해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무분별한 시장만능주의가 빚어낸 결과”(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인간이 상실된 냉혹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고 분석하면서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는 미국 유럽 중국이 기침만 해도 폐렴에 걸릴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크다. 세계경제 위기에 대비한 금융시장 안정,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의 극복, 일자리 창출, 재정 건전성은 누가 대권을 잡더라도 발등의 불이다. 대외 변수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역량이야말로 차기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분배는 곳간에서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총선에서 한국 정치권이 내놓은 ‘좌클릭’ 공약을 ‘선진국 문제’라고 비꼬았다. 한국의 1인당 소득이 2만4000달러로 미국(4만8000달러), 일본(4만7500달러)보다 크게 떨어지는데도 복지국가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2007년 GDP 대비 정부 부채가 36%로 당시 한국(31%)과 비슷했지만 5년 만에 79%로 급증했다. 부동산 거품, 방만한 은행, 무분별한 복지서비스가 부른 재앙이다. 한국의 911조 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 부동산 경기 침체, 악화하는 지방재정, 늘어나는 복지 공약에 대해 대선 주자들이 어떤 처방전을 갖고 있는지 국민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