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영국이여, 부활하라!

  • 동아일보

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5세와 7세 아들을 둔 찰리 퓰러 씨(42)는 영국 런던 스트랫퍼드의 올림픽공원 옆에 들어선 유럽 최대의 쇼핑단지 ‘웨스트필드 스트랫퍼드 시티’의 건물 경비원이다. 그는 “2년 동안 실업자였는데 지난해 12월 지금의 일자리를 얻고 가족은 행복을 찾았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스트랫퍼드는 저소득층이 많은 런던 동부에서도 대표적인 빈민촌이다. 지난해 8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던 해크니와 인접해 있다. 하지만 300개의 가게와 80여 개의 식당, 3개의 호텔이 입주한 웨스트필드 쇼핑단지와 올림픽타운은 이곳 주민에게 기회와 희망의 상징이 됐다.

비가 오락가락한 18일 런던 최고의 번화가이자 쇼핑가인 옥스퍼드 거리. 구두매장 직원 마틴 씨는 “올림픽으로 관광객이 늘고 매출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 거리의 구두가게 옷가게 등은 50∼70%의 세일을 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거리와 교차하는 리젠트 거리도 명품 매장들까지 세일 행사를 하며 올림픽 특수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지하철 런던브리지 역 주변 곳곳에서는 아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 개장한 ‘더 샤드’로 불리는 런던 브리지타워의 위용은 대단했다. 4년 3개월 동안 공사비 8000억 원이 투입된 유럽 최고층(310m) 건물인데 아직도 공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런던다리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신축 중인 고층 건물만 10개가 넘었다. 다리 옆 템스 강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직원은 “최근 수년간 이 주변에 공사가 끊인 날이 없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건 1908년과 1948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의 런던 올림픽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영국이 어떤 위상을 가진 나라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1908년 제4회 올림픽 개최지는 원래 로마였지만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이탈리아가 대회를 포기하자 영국이 대신 바통을 받았다.

나치 독일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은 1948년 제14회 올림픽을 개최했다. 세계 59개국, 선수 4104명이 참여해 감동과 희망의 대결을 펼치며 전쟁의 참화와 아픔을 치유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광복 후 처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체코의 육상 영웅 에밀 자토페크는 중위 신분으로 대회에 참여한 뒤 “전쟁 기간 잃어버린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이 선수촌에서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이번 제30회 런던 올림픽은 유럽을 휩쓸고 있는 재정위기의 쓰나미와 영국 정부가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열리게 됐다. 영국의 올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 지난해 4분기(10∼12월) ―0.3%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하지만 올림픽 특수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올림픽 전후 기간에 10억 파운드(약 1조7800억 원)의 경제효과가 창출되고 장기적으로 2015년까지 130억 파운드(약 23조1700억 원)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회 개막이 코앞인데도 민간기업에 아웃소싱을 했던 보안 대책에 구멍이 나 군과 경찰을 부랴부랴 추가 투입하는가 하면 악명 높은 런던 날씨 때문에 관련 경기 일정의 재조정을 검토하는 등 걱정거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영국과 영국 국민이 이번 올림픽을 통합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뜨거운 의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대회 개막을 일주일 안팎 앞둔 런던은 기대와 흥분, 희망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영국#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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