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美 최고 과학영재高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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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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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미국 최우수 공립학교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의 토머스제퍼슨 과학기술고가 최근 학생 선발 방식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토머스제퍼슨의 머리글자를 따 ‘TJ고(高)’로 불리는 이 학교는 실험과 프로젝트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한국의 과학고도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잇따라 TJ고를 방문할 정도다.

한 해 480명을 뽑는 이 학교는 영어와 수학, 중학교 내신 성적, 교사추천서 및 학생 에세이 등을 종합 심사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해마다 3000명이 넘는 학생이 지원해 1, 2차 시험을 치른다.

이 학교의 학생 선발 방식이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가을학기에 입학한 학생들의 성적 부진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TJ고는 학년말 학점 평점이 B(3.0) 이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 권유한다. 학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수준의 수업을 하는 다른 공립학교로 전학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지난달 학기말이 다가오자 학교는 비상이 걸렸다. 평점이 B에 못 미치는 학생 비율이 과거보다 월등하게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는 방과후 보충수업으로 뒤처진 학생을 추가로 지도했다. 전학 권고기준을 원래 기준보다 낮춰 B―(2.7)로 하향 조정하고 추가 과제물을 내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도 줬다. 그래도 30여 명이 최종 전학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TJ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별도 영재반에서 공부해 왔다. 보통 공립학교에 갔다면 우수한 성적을 냈을 학생들이 경쟁이 치열한 TJ고에서 성적 부진 때문에 입학 첫 학기부터 좌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학교는 지난해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선발 과정에서 수학과 과학 성적 외에도 에세이와 교사추천서에 적지 않은 비중을 뒀다. 문학과 예술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학생을 골고루 선발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게 학교 방침이었다.

이러다 보니 당초 취지와 달리 학업성적 저하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근 폴스처치의 명문 롱펠로중학교 번 윌리엄스 수학 교사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에 “TJ고가 수학 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제쳐놓고 다방면에 뛰어난 학생을 뽑는 것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명 수학교사인 그의 추천서는 합격보증서나 마찬가지였지만 지난해에는 그의 추천서를 받고도 떨어진 학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교의 2012년 가을학기 신입생 480명 가운데 308명이 아시아계 출신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백인은 126명이고 히스패닉은 13명, 흑인은 7명밖에 없다. 최근엔 TJ고 신입생 가운데 극소수인 히스패닉계와 흑인사회도 TJ고의 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들고일어났다. ‘침묵연맹(The Coalition of the silence)’이라는 조직은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도움을 얻어 “TJ고가 입시에서 라티노와 흑인을 차별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연방교육부에 냈다. 페어팩스카운티 전체 학생의 32%가 라티노와 흑인인데 올해 TJ고 신입생에서 두 인종이 차지한 비율은 겨우 4%에 그쳤다는 것이다.

과학 수학 영재 학생을 뽑아 엘리트 교육을 제공하는 TJ고는 이처럼 다양성과 평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목소리에 또다시 고심하고 있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소수정예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영재교육 시스템을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하려 하는 것이다. 과열 경쟁을 이유로 아예 평준화 교육을 주장하며 영재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한국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과학영재고#토마스제퍼슨 과학기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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