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계청, 정치와 여론 속의 통계 오류 바로잡아야

  • 동아일보

대선주자들이 출마선언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자기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엉터리 통계숫자를 인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본보 7월 19일자 A1·2면 참조).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강연에서 대기업 고용실태를 언급하면서 2010년 대기업 고용비중을 8.19%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바른 숫자는 14.5%로 큰 차이가 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한국을 ‘선진국 중에서 식량자급률이 가장 낮은 나라, 행복지수가 가장 낮고 청년실업률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나라’라고 했지만 셋 다 사실과 다르다. 정세균 김영환 민주당 의원,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이 인용한 통계에도 잘못된 것이 있다.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어야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엉터리 통계가 검증 없이 인용된 것이다.

통계가 잘못되거나 통계 인용이 정확하지 못하면 논리의 골조가 허물어진다. 고용노동부는 올 4월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자료를 내놓으면서 ‘전국의 의사 숫자가 2010년 4만7000명에서 2020년 7만7000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보건복지통계에 따르면 2010년 이미 8만2000여 명의 의사가 일하고 있었다. 고용부 통계는 의사 이외에도 20여 개 전문직에서 실제와 다른 수치를 제시했다. 이 통계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할 때 쓰이는 자료다. 잘못된 통계가 학생들의 진로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작년 황우여 의원은 5년 전 통계를 기초로 ‘반값 등록금’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이 1.2%인데 우리는 0.6%에 불과하다며 반값 제안을 했지만 2007년 통계수치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후 한국의 고등교육예산은 급증해 2007년 4조 원에서 작년 6조 원대에 이르렀다.

통계 자체의 오류도 문제지만 해석의 오류나 편향된 인용도 문제다. 2007년 정부의 부동산가격 안정 대책이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통계해석 잘못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도 잘못을 시인했지만 집값은 폭등한 뒤였다.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입맛에 맞는 통계만 들이댈 경우 오류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진다. 국의 간을 보려면 한 솥(모집단) 다 마셔볼 것 없이 한 국자(표본)만 맛보면 되지만 국을 잘 휘저은 뒤에라야(표본의 무작위성과 대표성) 올바로 간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진단을 해놓고 올바른 치료를 할 수는 없듯 통계가 부실하거나 왜곡 인용되면 국정이 표류하기 쉽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이러저러한 약속을 하고 나면 그것이 정책화했을 때 나라와 민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 나아가 잘못된 통계는 국민의 판단을 흐리며 여론을 왜곡해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오도할 수 있다.

한국은 인구 100만 명당 통계기획 및 분석인력이 9명으로 뉴질랜드 245명, 네덜란드 159명, 캐나다 139명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 통계 공무원 인력의 대부분을 현장조사원이 차지하고 있다. 내용이 민감한 통계가 나왔을 경우 발표를 앞두고 상급부처의 눈치를 보는 관행도 여전하다. 통계청장 자리가 통계전문가 몫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몫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바른 통계를 생산해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통계인력의 질과 양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각 부처 및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통계의 품질을 높이고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통계청은 국가통계에 대한 조정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발동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정치권이 잘못되거나 일방적인 통계를 유포하는 경우 통계청이 오류를 바로잡아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선주자#통계#여론#통게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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