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계층 상승’ 결혼의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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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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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만둣집 딸. 우연히 의사로 일하는 부잣집 외동아들을 만난다. 남자 쪽 어머니는 별 내세울 것 없는 여자 대신 ‘급’이 맞는 동료 의사와 결혼하라고 고집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둣집 딸과 의사는 결혼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알아서 떠나라”고 다그친다. 지금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 나오는 얘기다. 같은 시간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에서는 재벌가문 딸과 결혼한 야심 있는 남자와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재벌 총수 장인의 팽팽한 대립이 숨 가쁘게 그려진다.

▷한국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에 버금갈 만한 소재를 꼽으라면 사회적 계층이 다른 남녀의 결혼이다. TV채널만 돌리면 사회 경제적 조건이 비슷하거나 나은 상대와 결혼을 시키려는 부모들과 이에 맞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순정남녀’, 신분 상승을 노린 결혼을 위해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야심남녀’가 단골로 나온다. 시청률에 목숨 거는 드라마들이 비슷비슷한 소재를 되풀이해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는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에 맞서 자녀의 ‘끼리끼리 결혼’을 바라는 중상류층 부모 세대의 안정추구 심리도 뿌리가 깊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결혼 여부가 계층을 구분하는 잣대로 떠올랐다. 제대로 교육받고 잘사는 사람들은 결혼해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자녀를 양육하지만 저학력의 저소득층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채로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결혼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도 부모와 같은 과정을 대물림하면서 새로운 계급 격차가 고착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출생하는 아이 10명 중 4명은 싱글 맘이나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다.

▷남녀의 결합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이용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나온다. 결혼이 조건이나 물질이 아닌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의 결합이 돼야 한다는 것은 재력 학벌 외모 직장을 따지고 드는 요즘 결혼시장 세태에서 지루한 설교처럼 들리기 쉽다. 봉건적인 신분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회경제적 지위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사회 계급의 성문 앞에서 결혼을 통한 계층 상승의 욕망은 때론 성공하고 때론 좌절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계층 상승#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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