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선생은 한국의 중국학 발전에 초석 놓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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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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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선생 1주기 학술세미나

故 김준엽 선생
故 김준엽 선생
‘마지막 광복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렸던 고 김준엽 선생(1920∼2011)이 7일 서거 1주기를 맞는다. 한중수교 20주년인 올해 현대 한중 학술교류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의 업적이 더욱 부각되면서 학자적 면모를 조명하는 추모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고인의 완곡한 유지와 유가족의 뜻에 따라 학술행사 외에 별도의 1주기 행사는 마련하지 않았다.

선생은 일본 게이오대 동양사학과에 유학 중이던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한 뒤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귀국 직후인 1949년 고려대 사학과 조교수로서 중국사학자의 길을 걸었고 1982년 제9대 고려대 총장에 올랐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재단법인 사회과학원은 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아세아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김준엽과 중국’을 주제로 국제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한중일 학자 30여 명이 참석해 선생의 주된 연구 분야였던 한국의 중국학, 중국의 한국학, 한반도 통일 문제 등에 대해 토론했다.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조연설 ‘김준엽 선생과 한국의 중국학 발전’에서 “선생은 한국의 중국학 발전에 값진 초석을 놓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국중국학회와 사회과학원, 아세아문제연구소 등을 설립하며 한중 학술교류의 기반을 다졌다. 또 중국 관련 저서 ‘중국공산당사’ ‘중국최근세사’ ‘중공과 아시아’를 비롯해 다수의 편집서와 번역서를 남겼다. 선생은 한국의 학자들을 대만과 미국 등지로 유학 보내 중국학자로 키우고, 교육 당국에 권유해 고려대를 비롯한 9개 대학에 중어중문학과를 설립하도록 했다. 윤 교수는 “선생은 단순한 역사학자에 그치지 않고 유엔총회 한국대표를 세 차례 지내는 등 행정가와 외교가의 수완을 지닌 지성인이었다”고 말했다.

선딩창(沈定昌)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기조연설 ‘김준엽 선생과 중국의 한국학 발전’에서 “선생은 중국의 한국학 발전을 위해 씨를 뿌린 분”이라고 평가했다. 선 교수는 “선생은 중국인 유학생들을 한국학자로 양성하기 위해 한국 유학을 지원하는 등 열성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이징대에 한국학연구센터를 창립한 양퉁팡(楊通方) 베이징대 교수, 베이징어언문화대에 한국어과를 창설한 쉬웨이한(許維翰) 베이징어언문화대 교수 등이 선생의 제자로서 중국에서 한국학 발전의 맥을 이었다. 또 선생은 1988∼2010년 60여 차례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대 푸단대 난징대 등 중국 내 11개 유수 대학에 한국학연구소 설립을 이끌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발제 ‘김준엽 선생과 중국 연구, 그리고 한반도 통일 문제’를 통해 “선생에게 학문은 단순한 흥미의 대상이나 출세의 방편이 아니라 독립운동과 건국운동, 애국운동의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7일에는 오후 2시 고려대 문과대 서관 132 강의실에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전 상지대 총장)가 ‘광복군과 김준엽’을, 서 교수가 ‘한국대학과 김준엽’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다.

선생의 제자인 강 교수는 “선생은 성격이 밝고 상당히 진취적인 분이셨다”며 “요즘엔 진보를 곧 좌파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선생은 좌파가 아니면서도 진취적으로 ‘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 쓰셨다”고 말했다. 역시 선생의 제자인 김정배 고려대 명예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선생은 학문을 넓게 보길 강조하시며 한국사를 공부하더라도 세계로 눈을 넓히라고 조언하셨다. 내가 한국학을 했지만 해외 유학길에 오른 것도 선생의 영향 덕분”이라고 전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 15일까지 高大서 1주기 전시회 ▼

고려대 문과대 1층 로비에 마련된 김준엽 선생 1주기 전시회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를 찾은 학생들이 고인의 사진과 유품을 둘러보고 있다. 고려대 제공
고려대 문과대 1층 로비에 마련된 김준엽 선생 1주기 전시회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를 찾은 학생들이 고인의 사진과 유품을 둘러보고 있다. 고려대 제공
“영원한 우리의 스승님, 존경합니다.”

“긴 세월 아득히 떠나 있다한들 깊은 수풀에도 새벽이 가까우니 그 무엇을 그다지 두려워하리오.”

1985년 전두환 군사정권과 마찰을 빚어 제9대 고려대 총장직에서 강제로 물러난 고 김준엽 선생에게 당시 학생들이 보냈던 응원의 글귀들이다. 고인은 실질적인 대학 자율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다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이를 막지 못한 학생들은 그해 3월 15일 교내에서 ‘고려대가 죽었다’는 의미의 장례식을 치렀다.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회가 고려대 문과대 1층 로비에 마련됐다. 전시회의 제목은 고인의 좌우명인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 전시장에는 고인의 사진 50여 장을 △김준엽 선생의 발자취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며 ‘長征’ 길에 오르다 △학자의 길을 걷다 △총장직에서 강제로 사퇴를 당하다 △한국학 발전에 힘쓰다 등의 순으로 연보와 함께 전시했다. 앞에서 소개한 학생들의 글귀와 장례식 사진도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생에게 수여한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국립대만대에서 연구하던 시절의 일기장, ‘한국무장독립운동의 성격’과 ‘독립운동의 역사관’ 친필 원고와 명함을 비롯해 유품 45점도 전시됐다. 같은 공간에서는 2011년 8월 25일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나는 광복군이다. 김준엽의 장정(長征)’을 상영한다. 전시장은 15일까지 오전 9시∼오후 5시 일반인에게도 개방된다.

고려대는 4일부터 8일까지를 김준엽 선생 기념 주간으로 제정하고 선생을 추모하는 강연회와 포럼을 마련했다. 8일에는 문과대 학생회 주최로 인문학 콘서트가 열린다. 1부 ‘행동하는 지성’에서는 ‘인문학이 어떻게 실천성을 갖출 수 있는가’를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 2부 ‘함께하는 장정’에서는 고인의 대표 저서인 ‘장정’의 독후감 당선 작품을 시상하고 낭독한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김준엽#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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