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스마트 수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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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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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논설위원
권순택 논설위원
한상대 검찰총장은 ‘스마트(SMART) 수사’ 주의자다. SMART는 전문성(Specialization) 절제(Moderation) 정확성(Accuracy) 신속성(Rapidity) 과학성(Technology)의 영어 첫 글자로 만들었다. 특정한 목표물을 정밀 타격하는 스마트 폭탄처럼 비리의 핵심을 파고드는 고효율 수사라는 뜻도 있다. 한 총장은 “부정부패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스마트 수사가 체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마트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과거 검찰 수사의 폐단을 크게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권도 예외 없이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총장 취임 후 정치적 사건도 많았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현직 국회의장이 기소됐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처럼 과거 정권에서는 없던 일도 터졌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도 처음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사찰은 있었지만 사건화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들은 모두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됐지만 의외로 조용히 마무리됐다. 수사 대상을 핵심 인사에 국한해서 최소화하고 속전속결로 진행한 스마트 수사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권에 불리한 사건이라 축소지향적으로 처리했다거나 수사가 부실했다고 비판받을 소지도 많다. 실제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불신 때문에 특별검사팀이 구성돼 수사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4월 총선에서 야당의 패배로 동력을 잃었지만 19대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특검 수사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정권 말기에 되풀이되는 권력자 측근 비리를 보면서 사정기관의 권력 주변에 대한 범죄 정보 수집 능력이나 의지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검찰이 지난해부터 비리 혐의로 대통령 측근을 여러 명 구속했지만 대부분 우연한 계기에 수사가 이뤄졌다. 조직적이고 치밀한 범죄 첩보 수집활동의 결과는 아니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은 저축은행 로비스트 수사의 유탄을 맞았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서류 한 장이 계기가 돼 구속됐다.

사정이 이러니 검찰이 평소 권력 주변에 대한 비리 첩보 수집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의심스럽다. 한 총장은 취임 후 대검 범죄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했지만 범죄 정보를 X파일에 쌓아놓기만 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직무유기도 물어야 한다. 권력 주변의 비리 첩보를 수집하는 체제부터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의 비리 혐의는 대부분 현 정권 출범 이전부터 이 정권 출범 초기까지 이뤄진 것이다. 검찰이 거기까지만 수사했을 수도 있고, 이들이 정권에 들어간 뒤 비리와 절연(絶緣)했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검찰의 수사 능력 때문인지, 수사 의지 때문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추가 수사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스마트 수사가 대통령 측근 몇 명 잡아넣고 ‘몸통은 나 몰라라’ 하며 손을 털자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일각에서 대통령 측근들의 구속을 놓고 “검찰이 박근혜의 앞길을 청소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검찰이 권력 실세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답하는 수밖에 없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스마트 수사#측근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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