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주헌]원전-화석연료 사용 줄이려면 에너지부터 아껴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화재 진압대원의 아내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그의 곁을 지켰다. 재즈의 발상지로 유명한 미국 뉴올리언스를 침수시키고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간 허리케인 카트리나, 바닷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 날로 빈도가 높아지는 대형 지진과 쓰나미, 녹아내리는 빙하와 늘어나는 사막….

방사능 오염과 지구온난화의 공통점은 에너지 소비에서 비롯됐고 발생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재앙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환경 현안이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원자력과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면 된다. 해결책은 에너지 절대 사용량을 줄이는 에너지 절약과 클린 에너지인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에너지 절약은 기술 개발과 생활양식 변화로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제로에너지 건물 등 에너지 절약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나 모두 초보적 단계로 당장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또한 전기 가격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것처럼 값싼 에너지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산업과 생활양식도 획기적인 에너지 가격 인상이 없이는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가격 인상은 기술 개발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꿈의 에너지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처럼 손쉽게 쓸 수 있게 되는 날, 인류는 에너지 고갈과 방사능, 지구온난화의 공포에서 해방될 것이다. 꿈은 언젠가 이뤄지겠지만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 현재 기술로는 100만 kW급 원전 1기를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1000만 평이, 풍력으로 대체해도 500만 평 이상 필요하고 발전단가도 매우 높다.

따라서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근본적 해결은 미래의 꿈으로 남겨 놓아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징검다리 에너지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선택도 조심조심 가야만 하는 안전하지 않은 길이다. 원전 확대는 지구온난화 완화에는 기여하겠지만 후쿠시마 사태 같은 대재앙의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를 더하는 화력발전을 마냥 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격 인상도, 원자력도, 지구온난화도 없는 그린에너지 세상은 당분간 존재하기 어렵다. 원전 폐기를 원한다면 에너지 가격의 대폭 인상에도 동의해야 한다. 가격 인상 없는 원전 폐기 주장은 거짓말이다. 가격 인상에 주저한다면 원전 폐기에도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단지 위험의 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는 슬픈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살피며 서서히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경로 의존적 사안이지 과거와 단절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새로운 길로 불쑥 들어설 수 있는 경로 파괴적 사안이 결코 아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원전#화석연료#에너지절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