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나꼼수 아바타’ 길 가는 민주당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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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유권자들의 태도와 투표 행태에서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20, 30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실리적 투표를 했던 40대는 젊은 세대와 동조화하는 ‘2040세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중도층과 부동층이 현격히 늘어나고 이들이 친(親)야당 성향을 보인다. 정당 지지도와는 달리 정당 혐오도에서 새누리당이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원칙없는 승리’ 노무현 정신 훼손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는 욕구도 강하다. 선거 막판에 유권자들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유권자 재편성’의 기류는 분명 야당에 유리하게 보인다. 문제는 이런 민심의 우호적 기류가 민주통합당에 득(得)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毒)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권력을 다 잡은 듯 오만함과 안이함이 도를 넘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말로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굴욕 외교의 극치라고 비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말에 진보 진영의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르면서까지 한미 FTA를 추진했다. 특정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오직 국익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추진한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결실이다. 개방은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역설했다. 심지어 한미 FTA 반대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까지 비난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의식해서인지 “민주당이 집권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의 대표가 시류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면 어떻게 그 정당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원칙 있는 승리’가 제일 좋은 것이고, 그 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이고, 가장 나쁜 것이 ‘원칙 없는 승리’라고 했다. 만약 한미 FTA 폐기를 기치로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원칙 없는 승리’이고, 노무현 정신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공천혁명은 사라지고 ‘기득권 지키기 공천’과 ‘코드 공천’이 판을 치고 있다. 3차까지 117곳의 공천을 발표했지만 현역 의원은 단 한 명도 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사무총장을 버젓이 낙점하는 ‘배째라 공천’을 감행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다. 이런 민주당이 어떻게 새누리당을 향해 ‘뼛속까지 부패한 정당’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공천심사위원장이 민주당 지도부가 공천과정에 개입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해 공천심사를 중단했겠는가.

말 바꾸기와 오만 심판 받는다

셋째, 국민을 위한 선거를 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봉주, 친노(親盧) 486 등 특정인을 위한 선거에 매몰돼 있다. 아무리 총선 결과가 대선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선거가 선거답기 위해서는 선거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총선이 대선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유력한 야권 대권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문재인 상임고문을 위한 선거에 몰입하고 있다. 더구나 민주당은 공당(公黨)의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꼼수 아바타’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걸핏하면 정봉주 전 의원에게 달려가고 심지어 표를 얻기 위해 ‘정봉주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정봉주와 함께하는 것이 마치 정체성의 기준인 양 처신하고 있다. 그동안 정통 야당이었던 민주당을 묵묵히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괴감을 갖게 한다.

2004년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만든 열린우리당은 탄핵 광풍에 힘입어 과반수인 152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지만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도권은 더 참담했다. 2004년에는 76석을 얻었지만 2008년에는 26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덕적 우월주위에 빠져 국민과의 소통을 멀리 한 채 ‘닫힌 너희당’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 선거에서는 후보가 누구인지 정책이 무엇인지 모른 채 ‘묻지마 식 투표’를 하고, 찍고 나서 후회하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 바꾸고 오만하고 무능한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진실도 동시에 존재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짝퉁 노무현 정신을 배격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거에 몰입하는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 joon57@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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