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립대학 편법 기성회비, 수업료에 통합하라

  • 동아일보

서울중앙지법은 27일 “국공립대학들이 징수한 기성회비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 없이 얻은 부당이득이므로 학생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기성회비 제도는 나라살림이 어려웠던 1963년 대학의 연구비와 시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입학금과 수업료 이외에 돈을 더 걷을 수 있도록 정부가 훈령으로 마련했다. 수업료 항목은 대학들이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아 사용해야 하는 반면 기성회비는 징수와 관리가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다.

대학들은 등록금 가운데 수업료는 조금씩 올리면서 주로 기성회비를 해마다 큰 폭으로 인상했다. 이런 관행이 누적돼 2010년 기준 전국 40개 대학 국공립대 등록금 수입(1조5660억 원) 가운데 기성회비의 비중은 84.6%(1조3253억 원)에 이르렀다.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돼 10년 내 졸업한 국공립대 학생 195만 명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내면 국공립대는 10조 원이 넘는 돈을 반환해야 한다.

기성회비 역시 수업료와 함께 대부분 학교시설비, 교수 연구비, 학교운영 경비 등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10년 동안 받은 기성회비를 다시 돌려주라는 1심 판결은 현실을 무시한 측면이 있다. 기성회비를 정부 돈으로 물어줘야 한다면 가뜩이나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을 적게 내는 국공립대 학생 및 졸업생들에게 엄청난 국민 세금을 투입해야 할 판이다.

일부 대학은 기성회비를 학생 교육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쓴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총장이 관사 대신 쓰는 아파트의 소파와 TV를 기성회비로 사들이는가 하면, 골프장 노래방 단란주점 등에 회식과 접대를 이유로 빈번히 드나들며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기성회비 예산으로 정산한 대학도 있었다.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기 지갑에서 나온 돈처럼 아껴 써야 할 것이다.

기성회비를 걷지 않고 수업료도 그대로 두면 재원 부족으로 국공립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높다. 차제에 기성회비를 없애고 수업료에 통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성회비와 수업료를 통합해 걷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된 국립대 재정 회계 개정법안은 2009년 1월 국회 상정 이후 지금껏 계류 중이다. 국회는 법안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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