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인숙]방송환경 변화 맞춰 ‘지상파 재송신’제도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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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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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인숙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케이블TV가 KBS2 방송을 끊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가입자 할 것 없이 1500만 케이블TV 가입자는 16일 오후 3시부터 28시간 동안 KBS2를 시청할 수 없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시청자들도 혼란을 겪었다. 지상파방송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난마처럼 얽힌 방송정책 중에서도 사업자 간 갈등의 골이 가장 깊은 사안이었다.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지상파는 방송 장자(長子)로서의 대승적 자세를 가질 법도 하건만 협상을 결렬로 끝내버렸다. 케이블TV는 전송 중단으로 빚어질 시청자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송을 끊어버렸다. 공익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방송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두 방송사업자 간에 공익에 대한 책무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자사 이기주의만 고집했다. 방송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사업자 간 갈등 상황을 해소하거나 시청자 피해를 막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송법은 제3조에서 시청자의 권익 보호를 가장 우선적 가치로 설정하고 있으며, 방송의 결과가 시청자의 이익에 합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관할 규제기관으로서 한층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의 분쟁 조정절차를 보더라도 자발적, 의무적 협상 이후에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직권 중재를 하고, 그래도 중재가 성립되지 않으면 중재기구가 권고안을 마련해 시행하게 된다.

이제 남은 절차는 방통위의 직권 중재나 법적 강제력이 있는 권고뿐이다. 양측이 최후까지 대가 협상에 이르지 못한 만큼 방통위가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이 종료되는 2012년 말까지 대가 산정을 유예하도록 하고, 그동안의 양측 기여에 대해서는 등가 산정하도록 직권 중재할 것을 제안한다.

지상파는 케이블TV의 홈쇼핑 매출액 기여가 지상파 재전송 행위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 주장은 타당하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따라 중계유선방송(RO)의 수신보조 역무를 승계하였으므로 다른 플랫폼과 달리 케이블이 재송신에 기여한 역할을 인정해 달라는 케이블TV 측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여러 경제학자가 다양하고 복잡한 수식을 마련해 양측의 기여도를 산정했지만 양측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사실상 정확한 정산도 쉽지 않았다. 지상파가 주장하는 가입자당 정산 방식 280원 역시 케이블TV 측이 납득할 만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과거 정산은 상호 동일하게 정산하는 것으로 하고, 향후 정산은 2013년 시작하는 것으로 큰 틀의 합의를 보자는 것이다.

그 대신 방통위가 지상파에 대한 일종의 경고 조치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지상파 채널번호 변경 시 수반되는 ‘지상파의 사전 동의 확보’ 의무 폐지를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이 조치의 실행을 2012년 말까지 유예하거나 재고해야 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현재의 지상파 대역은 무선국 허가와 함께 부여된 번호 대역이기에 지상파 채널번호의 변경권을 SO에 부여하는 것은 지상파에 대한 경고 조치라고는 하나 적절하지 않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시청자의 시청습관에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의 특수성과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 방안을 경고적 조치로써 단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 사업자 간의 갈등과 대립은 방송 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입법 조치가 미비한 데서 비롯된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방통위는 유예기간에 재송신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첫째, 의무 재송신의 목표와 범주를 재설정하고 둘째, 콘텐츠 이용료의 산정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방안을 마련하며 셋째, 향후 사업자 간 대가 산정 시 참고할 수 있도록 난시청률에 대한 정확한 공인 자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인숙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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