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후쿠시마 사고 280일 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0일 03시 00분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280일이 지났다. 그동안 원전 사고 때문에 6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이주를 했다. 집을 떠난 사람들은 방사능의 피해에 대한 걱정이 제일 크고, 경제적 수입에 대한 우려가 그 뒤를 잇는다. 주택, 건강, 아이들의 학업도 고민되는 문제다. 이주민 중 80% 가까이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원자력에 대한 입장은 크게 변해서 이제는 지역 주민 중 70%는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9개월간 후쿠시마 현에서는 재건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녹아내린 원전의 해체 계획을 세웠으며, 재건을 위한 예산과 절차를 준비했다. 이 과정은 방사능과 관련해서 안전과 건강에 대한 영향 기준의 재검토를 포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5개월을 맞은 8월 11일에 ‘후쿠시마 현 재건 비전’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현의 재건위원회 의장인 스즈키 히로시 후쿠시마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재건 비전은 세 가지 기본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후쿠시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합쳐 지역을 재건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지역을 우선 복구하는 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 원칙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부활하는 방식으로 재건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번 재앙을 겪으면서 공동체의 결속력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주민들은 이러한 공동체 결속력을 더 강화해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日지역주민 70% 원전에 부정적

세 번째 원칙은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에 후쿠시마는 ‘원자력 포기’ 원칙에 근거해 핵 발전에 의존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개발하며, 에너지 절약과 리사이클링을 지원하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천명했다. 또 후쿠시마 현은 지역에서 가용한 여러 가지 에너지원을 결합해서 에너지 자립을 꾀하는 ‘다극 분산형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에너지 자립 모델에서는 동시에 통신, 수송, 기타 인프라를 위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에너지원과 기술을 이용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효용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려는 후쿠시마 현의 노력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일본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원자력 마피아’처럼, 일본에서도 원자력 산업, 핵공학, 원자력 정책 부서가 같은 이해관계 아래 똘똘 뭉쳐서 원자력 발전을 추진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원자력촌(原爆村)’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전근대적 촌락이 외부와 단절하면서 부족 구성원들끼리만 똘똘 뭉친다는 점에 착안한 표현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일본의 원자력촌이 와해되었다든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징후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이들이 이전처럼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내고 주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의 안전에 대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우리를 믿으면 된다’는 게 이들이 기술적 전문성을 강조하던 과거의 소통 방식이었다면 이제 이런 얘기를 더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원자력과 관련해서도 전문지식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능력 및 리더십이 더 절박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되고 있다. 원자력과 관련해 시민참여의 정치적 공간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우리도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기의 원전 운영과 착공을 새롭게 허가했다. 또 서울 노원구에서 검출된 방사능 폐아스팔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평가해서 주민 및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위원회의 상임위원은 인문사회 분야, 법률 분야, 건강 분야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시민사회의 추천 없이 정부에서 임명했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뚜렷하게 친원전 성향을 지닌 인사가 임명되었다는 점을 볼 때 이 위원회가 원자력 안전보다는 그저 원자력 진흥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될 공산이 크다.

에너지원 다변화 위해 노력해야

우리나라는 체르노빌 사태 이후 판로가 막힌 미국과 협상을 해서 기술을 이전받아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했다. 지금 추진되는 정책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전 세계 원전 산업이 주춤하는 동안 이 분야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그런데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에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보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그들의 복구 노력에서라도 일말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후쿠시마 현의 복구 현장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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