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타를 부끄러워하는 병영문화 이번엔 만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2일 03시 00분


지난해 11월 23일 해병대 서정우 병장은 마지막 휴가를 가기 위해 연평도 선착장으로 나갔다.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서 병장은 소속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서둘러 뛰어갔다. 그는 얼마 못가 날아온 포탄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안타까운 희생이었지만 서 병장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적 해병의 상징으로 국민에게 각인됐다.

지금까지 해병대가 공들여 쌓은 명예가 4일 발생한 총기 사건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사건을 일으킨 김모 상병은 왕따와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군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 3일과 10일에는 해병대 병사가 연이어 자살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민의 눈에 해병대원이 용감하고 듬직한 병사가 아니라 가혹행위를 당하는 가엾은 젊은이로 비칠까 두렵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지난달 15일 해병대를 주축으로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되면서 강화된 대북(對北) 대비 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없애겠다며 전군(全軍)에 부조리 실태와 대책을 보고하라는 긴급지시를 내렸다. 김 장관은 2005년 경기 연천의 최전방 내무반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 8명의 병사가 숨졌을 때 3군 사령관으로서 사고처리를 지휘했다. 군은 당시에도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며 법석을 떨었지만 실패했다. 이번 총기 사건은 병영문화에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음을 보여준다. 김 장관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군에서 추방해야 한다.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피해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를 살해하는 것을 범죄학에서는 ‘피해자 촉진 살인(victim-precipitated murder)’이라고 부른다. 해병대 총기 사건은 폭력이 폭력을 부른 전형적인 경우다. 해병대는 구타를 강한 병사로 만드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구타는 부끄러워해야 할 악습이다.

총기 사건도 문제지만 군내 자살 또한 심각하다. 육군에서도 5월과 6월 잇달아 사병이 자살했다. 군내 자살자는 2008년 75명, 2009년 81명에 이어 지난해 82명으로 늘어났다. 각급 지휘관은 부모의 심정으로 부하 병사들의 일상을 챙기고 문제가 드러날 경우 즉각 조치해야 한다. 군은 국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젊은이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보호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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