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교 4명 납북說 진상 밝혀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국군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정부가 진위(眞僞) 규명을 회피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채서 씨의 변호인은 지난주 서울고법 형사2부 재판정에서 “1999년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1994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로 옮겨 ‘흑금성’이라는 이름으로 대북(對北) 공작활동을 했다. 박 씨의 경력 때문에 변호인의 발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박 씨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인 작계 5027과 군사교범을 넘겨준 혐의로 지난해 구속 기소됐다.

장교 4명 납북설(說)은 ‘그런 일이 있다더라’ 수준이 아니다. 박 씨의 변호인은 ‘합동참모본부 소속 중령’ ‘두 명의 이모 대령’ ‘박모 대령’ 등 4명의 피랍자를 거론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직 일간지 북한 전문기자도 납치 사실을 알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국방부의 설명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국방부 관계자는 “4명이 납북됐다는 것과 대령급 장교가 포함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장교가 한두 명이라도 납북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양해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대북 공작은 특성상 은밀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대북업무에 종사하는 공직자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임무수행 중에 불의(不意)의 일을 당했다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북한에 끌려갔다면 납치 사실을 공개하고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군도, 정보기관도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했다. 영관급 장교 4명이 납치됐는데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12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며 방관하고 입을 다문다면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정부는 장교 납치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석방은 됐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 ‘정보사항’이라는 핑계로 쉬쉬하면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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