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직 국가원수급 모임인 엘더스그룹 회원 3명과 4월 26∼28일 북한을 방문한 후 서울에 왔다. 카터는 이번 방북 때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전 미국 대통령이 동양의 작은 독재국가 원수를 두 번이나 면담 신청해 만나지 못한 것은 미국의 굴욕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카터를 통해 남한 대통령과는 물론 미국과 조건 없이 만나기를 원하고 미국의 안전 보장 없이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북한의 종전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김정일은 미국과 대화가 필요하면 미국인 인질을 잡고 전직 미 대통령들을 불러들여 자신 앞에 굴종시킴으로써 북한 주민에게 ‘위대한 장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고, 카터는 북한이 억류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데려온 바 있다. 이번에도 5개월째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 목사 석방 문제를 협의했을 것이다. 카터는 이번 방북 때 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나 자신이 남북한의 경화된 국면을 완화하고 평화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이런 모습은 평화사절단이라기보다 뉴스메이커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올리려는 노욕(老慾)으로 보인다.
카터가 1994년 6월 북한 핵 위기 시 김일성과의 회담으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복귀시키고 미국의 영변 공격에 제동을 건 역할에 대해 자서전에서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 마음 편한 손님이 아니다. 카터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의 대선공약인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에 옮겨 1978년 3400명의 미군을 1차 철수시키고 추가 철군을 계획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와 미 의회 및 군의 반대, 땅굴 발굴 등으로 취소됐다. 카터는 재임 시 주한미군 철군과 함께 한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군이 한반도에 배치한 전술핵무기 제거를 압박해 북한을 흡족하게 했다. 카터의 이런 태도에 맞서 당시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선언하고 미사일 개발 실험을 해 한미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카터는 방북 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북한에 식량 지원을 중단한 상태라 아동과 임산부 등 식량 부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북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북한 식량난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도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식량난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농업정책 실패와 개혁개방 거부에 따른 자업자득이지 우리 탓이 아니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한 채 지금도 호화사치 생활을 하고 있다.
카터는 1979년 6월 29일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유신체제하의 한국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감정적 대립까지 하였다. 카터는 인권 문제에 대해 그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과거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김정일에게는 이제껏 인권 문제를 단 한마디도 거론한 적이 없다. 카터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등과 함께 미국 내에서 몇 안 되는 친북 성향 인물이다. 독재자 김정일에게 인권에 대해 바른말 한마디 못한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자격이 없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연이은 무력도발이 원인이며 이는 도발을 한 북한에 책임이 있다. 이제 카터는 김정일의 비핵화 및 식량놀음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카터는 희대의 독재자를 만나는 일로 국제뉴스메이커로 자처하는 것을 그만두고 고향인 조지아 땅콩농장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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