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세계역사를 바꾼 노점상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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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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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튀니지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26)는 길거리에서 과일과 야채를 팔며 여덟 식구를 부양하고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의 학비를 댔다. 단속 공무원들은 무허가 노점상 청년에게 번번이 돈을 요구했다. 하루는 그가 돈을 내놓지 않자 단속반은 야채와 과일을 압류하고 저울도 빼앗았다. 그가 울부짖으며 저항하자 단속반원들이 집단 구타를 했다. 그는 시청에 쫓아가 빼앗긴 물건을 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모든 문이 닫혀 있었다. 절망한 그는 휘발유 한 통을 사 몸에 뿌리고 성냥불을 댕겼다. 영국 BBC방송의 부아지지 여동생 인터뷰는 열심히 살던 젊은이가 부패한 독재국가에서 절망에 이른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튀니지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실업자다.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이 문자메시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자 젊은이들은 그의 사진을 들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23년 동안 벤 알리 독재정권의 압제에 눌려 살던 튀니지 사람들에겐 정의감 연대의식 동포애 같은 게 없었으나 부아지지의 분신 이후 젊은이들이 거리낌 없이 분노를 표출했다.

한 노점상의 죽음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역사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물줄기를 트는 경우가 왕왕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민심의 급류에 독재자들이 휩쓸려나가는 현상은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이다. 높은 식품 가격,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좌절, 오일 달러를 독재자의 일족이 독점하는 부패한 정치체제, 민주선거의 부재….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이 휘발유처럼 깔려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 부아지지가 불씨를 던져버린 것이다.

모든 독재정권 종착역은 민주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분노가 선거 국회 정당 사법제도 언론을 통해 통상적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나라를 뒤흔드는 빅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소 낭비적 요소가 있고 일사불란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가 모든 체제의 종착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민중의 불만을 뿜어내는 굴뚝 기능 때문이다.

중국 정부당국과 관변학자들은 재스민 혁명이 베이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중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해 국민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렸다. 철저한 인터넷 검열조치와 잘 조직된 경찰력으로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는 통제력을 갖추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87%의 중국인이 현상에 만족하고 있다. 중국은 북아프리카 국가처럼 1인 독재가 아니라 공산당 엘리트 집단이 통치하는 체제다. 마오쩌둥 이래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로 세 번 지도자 교체가 있었고, 2012년에는 시진핑의 집권이 예고돼 있다.

친(親)중국 시각을 가진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메가 트렌드 차이나’에서 “서구가 전 인류의 4분의 1을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해 훈계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서구가 ‘독재 정부’라고 비난하는 중국의 통치 형태가 거대정부와 자본주의의 조화를 통해 13억 인구에 경제적 부와 정치적 안정을 가져다주고 있다면 서구식 민주주의가 국민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제도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공산당 일당독재는 선거지향적 국가운영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하는 강점도 있다.

나이스비트의 진술은 한국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많이 들어봤던 ‘한국적 민주주의’와 논리가 흡사하다. 박정희 유신체제와 전두환 독재정권이 산업화를 이루고 국민소득을 향상시켰지만 이로 인해 높아진 국민 의식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서구적 모델을 받아들였다. 정치적 안정 속의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에게 공산당 없는 중국은 거대한 혼돈이자 공포이겠지만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검열하고 공산당 엘리트들끼리 모여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 수는 없다. 소득과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공산당 일당독재는 중국인들에게 몸에 맞지 않은 옷이 될 것이다.

북한의 SNS 대신할 심리전

북한은 특수기관을 제외하고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다. 페이스북 트위터도 안되고, 휴대전화도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한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젊은 청년이 분신을 하거나 항의시위가 벌어져도 소식이 확산되기 어렵다. 그러나 남한에서 벌이는 군의 심리전과 북한 민주화 운동 네트워크가 북에서 SNS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전단을 풍선에 실어 날려 보내고, 단파방송을 쏘고, 탈북자들을 이용한 구전(口傳)을 통해 부아지지의 죽음과 재스민 혁명의 확산을 북한 사회에 알려야 한다. 사회정치적 변혁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돼 거친 폭풍우처럼 독재의 아성을 휩쓸어버린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도 세계사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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