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토끼-거북이 경주와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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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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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묘년 토끼의 해다. 동양에서는 구토설화가 전해오는데 서양에서도 이솝이 ‘토끼와 거북이 경주’라는 우화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솝의 토끼는 신자유주의적인 토끼다. 시장경쟁에서는 강자라도 나태하면 낙오한다는 교훈을 경쟁력은 있으나 오만한 토끼의 경주 패배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복지민주주의 시대의 ‘토끼와 거북이 경주’는 이솝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진 것은 토끼가 거북이를 깔보고 낮잠을 잤기 때문이 아니라 강자인 토끼가 약자인 거북이에게 일부러 져 준 것이다.

토끼는 원래 지혜로울 뿐 아니라 부지런한 동물이다. 토끼의 이빨은 무엇이든 갉지 않으면 자라서 죽게 되기 때문에 토끼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그런 토끼가 낮잠을 잘 리 만무하다. 토끼는 낮잠을 자는 척하면서 느림보 거북이가 경주에서 승리하도록 양보한 것이다. 승리와 함께 상금까지 거머쥔 거북이에게 토끼는 복지까지 베푼 것이다. 그러면서 지혜로운 토끼는 거북이가 시혜가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힘으로 상금을 탔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도록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복지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복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당락을 가르는 핵심쟁점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소식이다. 선진국에서 민주화는 예외 없이 시민이 권력을 쟁취하여 정부를 구성하는 ‘국민의 권력(demo-power)’으로부터 시작하여 국민이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복지를 요구하고 실현시키는 복지민주주의(demo-welfare)로 발전하여 왔다. 그러므로 복지민주주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떤 복지민주주의로 갈 것인가에 관한 토론과 경쟁만이 남았을 뿐이다.

약자 거북이에 대한 토끼의 배려

그렇다면 한국판 구토경주 설화가 복지논쟁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복지의 기본정신은 애통해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설교하였고, 부처님은 남의 슬픔을 사랑하라는 자비(慈悲)를 설파하였으며,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인간본성의 으뜸으로 쳤다.

복지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강자인 토끼가 약자인 거북이의 불행과 슬픔에 애통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양에서도 복지는 구빈법(救貧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동양에서도 구휼(救恤)에서부터 복지가 시작되었다. 남의 슬픔을 사랑하는 자비의 정신은 칼날 위에서 경쟁하는 냉혹한 시장경제하에서도 사회통합을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였다. 역사적으로도 복지는 사회통합을 위해 강자를 대변하는 보수세력이 추진하였다.

둘째, 구토경주 설화에서 약자인 거북이는 무상으로 복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경주에서 승리함으로써 우승 상금이라는 복지를 받은 것이다. 소위 근로복지(workfare)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형 근로복지 모델은 신자유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시장에서는 부지런하고 빠른 토끼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거북이는 근로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

복지민주주의는 약자인 거북이에게 ‘출발에서의 평등’을 보장해줌으로써 토끼와 동등하게 근로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경주에 참가할 능력조차 없는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에게도 근로복지를 강요한다는 것은 약자의 슬픔에 애통해하는 복지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

셋째, 구토경주 설화는 복지는 국가 또는 공동체가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일부러 져줌으로써 상금을 탈 기회를 준 것이지 직접 상금을 주지 않았다. 상금은 마을공동체(오늘날의 국가)가 마을 구성원에게서 금품이라는 세금을 거두어 지급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민주주의가 재정위기를 불러와 적자민주주의(demo-deficit)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나 막상 재정위기는 복지민주주의가 발달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이 아닌 감세정책을 추진한 신자유주의국가에서 일어났다.

국민요구 부응할 복지체제 고민을

그러나 복지에는 돈이 드는 것이고 누군가가 부담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세금을 더 거두어서 복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으로 재선될 정치인은 드물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영국병, 독일병, 남미의 포퓰리즘 복지병을 들먹이면서 복지 공급의 확대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증세에는 반대하면서도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이 ‘저부담, 고복지’를 요구하고 있다면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기보다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복지체제를 고안해야 한다. 복지의 공급을 국가가 독점하는 ‘복지국가(welfare state)’에서 국가, 기업, 비정부기구(NGO)들이 복지의 비용 마련과 공급을 분담해 적자민주주의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복지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창조적 ‘복지공동체(welfare community)’를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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