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대통령 보고 앞둔 대기업들 ‘잠 못 드는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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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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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산업부 기자
김희균 산업부 기자
“시험 보는 꿈 꿔봤어요? 답안지는 넓은데 쓸 답이 없으면 진땀 나잖아요?”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다짜고짜 시험 얘기를 꺼냈다. 또 다른 그룹 임원은 “숙제가 점점 늘어난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도 힘든…”이라며 말을 흐렸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앞둔 대기업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24일 10대 그룹 총수와 마주앉을 예정이다. 포스코와 KT의 최고경영자도 초청받았다. 지난해 9월 13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주문한 간담회 이후 넉 달여 만의 모임이다. 겉으로는 “우리를 격려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며 여유를 부리지만 기업인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난해 9월 간담회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당시 기업인 12명은 이 대통령에게 5분씩 동반성장 방안을 보고했다. 대통령의 ‘OK’를 받기 위해 협력업체를 챙기겠다,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육성하겠다 등 각종 약속을 쏟아냈다. 심지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기업이 임직원을 평가할 때 협력업체를 얼마나 잘 챙겼는지까지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진정성을 가지라”는 주문이 돌아왔다.

대기업들의 숙제는 동반성장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투자와 고용확대 주문이 만만치 않았고, 최근에는 물가안정에 동참하라는 압박까지 커지고 있다. 앞다퉈 사상 최대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은 대통령에게 이를 어떻게 잘 포장해 보고할지 고민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이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의 신년사를 꼼꼼히 봤다는 보도에 ‘투자 더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며 “웬만한 방안은 이미 다 발표했는데 더 내놓을 카드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이번 모임에서 물가 관련 주문의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살을 깎으라’는 수준의 요구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통신비 등을 잡겠다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관련된 기업들은 물가안정 대책도 내놓아야 할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내외로 어려운 기업 환경을 도외시한 채 산업계에 너무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한 대기업 인사는 “이번에 경제부처가 모조리 유가 잡기에 달려드는 걸 보니 기업들은 아예 돈 벌지 말라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래저래 이번 주말은 이들에게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다.

김희균 산업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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