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재명]‘조세이탄광 한국인 위령비 건립’에 한국 정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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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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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사회부
박재명/ 사회부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우베(宇部) 시 앞바다에는 원통형으로 된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마치 ‘바다의 뿔’처럼 튀어나와 있다. 이제 어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 요구가 들어오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마지막까지 보존해야 할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설치된 두 개의 콘크리트 뿔. 여기에는 아픈 과거사가 숨어 있다.

두 기둥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해저 탄광인 조세이(長生) 탄광의 환기구다. 7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바닷속에서 광원들이 석탄을 캐냈다. 일본 최대의 해저 탄광이었던 조세이 탄광은 1942년 2월 3일 오전 10시 문을 닫았다.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갱도가 무너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183명의 근로자가 수몰됐다.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탄광 사고’지만 우리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당시 사망자 183명 중 절반이 훌쩍 넘는 136명이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끌려간 조선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까지 희생당한 한국인들을 위한 위령비가 없다. 일본 지자체에서는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 건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힘들다”고 말한다. 유족들은 1991년부터 유족회를 결성하고 ‘유해 발굴’과 ‘위령비 건립’을 요구했지만 두 가지 모두 실현되지 않았다.

정부가 하지 않는 일에 시민단체가 나섰다. 그것도 일본의 시민단체다. 20년 전부터 이 사건을 기리고 있는 ‘조세이 탄광 물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지난해 한국인 위령비 건립을 위한 땅을 사들였다. 이들은 탄광 소유주였던 라이손 후치노스케(瀨尊淵之助)의 후손들이 갱도 바로 앞 땅을 팔지 않자 자신들이 모금한 1000만 엔으로 현장에서 200m 떨어진 땅을 샀다. 이제는 그 땅에 세울 위령비 건립 자금이 없어 다시 일본 내 모금 활동에 나선다고 한다.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유족들이 1993년 처음 수몰 지점을 찾아왔을 때부터 매년 왕복 여비와 숙박비, 심지어 제사상에 올릴 제물(祭物)까지 마련해 줬다.

유족들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땅을 사준 것으로 모자라 이제 위령비를 세울 돈까지 모아준다고 하니, 그저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뭘 했나 싶습니다.”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 양현 부회장의 말이다. 유족들은 다음 달 3일 수몰 69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다. 올해는 새로 사들인 공터에서 추모식을 거행한다. 그곳에서 한국인의 돈으로, 한국에서 만든 위령비를 보고 싶다는 유족들의 기대는 헛된 망상에 불과할까. 가족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할 성싶다.

박재명 사회부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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