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재명]연평도는 아직도 戰時상태

  • 동아일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섬을 찾은 기자들에게 자전거는 귀중한 교통수단이다. 연평면사무소 앞에는 주민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떠난 자전거가 넘쳐난다. 차량이 없는 기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에 산재한 포격 현장을 돌아다닌다. 연평도의 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골목을 돌다 보면 전신주에 걸린 가로등 외에는 불빛을 발견할 수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타다 남은 이불과 깨진 유리창 조각이 흩어져 있다. 불이 꺼진 집 사이로 포격으로 불탄 집이 여러 채 보였다.

연평도에는 북측의 포격 도발로 파손된 집이 100여 채가 넘는다. 며칠 전만 해도 그 집에서는 손자의 재롱을 보고 즐거워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모든 것이 무너진 연평도에는 가족이 없었다.

기자는 25일 군의 출입 통제가 풀려 연평도에 들어오기 전까지 연평도가 ‘전시(戰時)’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이곳이 사실상 전쟁터임을 식사 때가 돼서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연평도에 쌀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가 구호 식량을 가져왔지만 이미 모두 동났다. 라면과 군에서 보급 받은 전투식량 두 가지를 ‘교대로’ 먹는 수밖에 없었다. 26일 기자의 하루 식단은 라면과 전투식량, 그리고 또 전투식량이었다.

민박집에서 떨며 하룻밤을 지낸 뒤 맞는 26일에는 실제 ‘대피상황’도 벌어졌다. 이날 오후 3시경 마을에는 “북한군 포탄 두 발이 또 떨어졌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돌았다. 주민과 취재진들은 ‘살기 위해’ 모두 대피소로 몰려들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챙길 수 없었다. 살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뛰었다. ‘죽음’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서늘한 감정으로 대피소에 머물렀다. 북한의 훈련포 소리를 오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언론 등을 통해 깨지고 불탄 집과 곳곳에 남은 포탄 자국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도 ‘장난’과 ‘선동’은 그치지 않는다. ‘예비군 소집을 명한다’고 허무맹랑한 문자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포폰 문제가 대포로 날아갔다’는 비아냥도 나와 가슴이 아팠다.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등 4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북한의 도발이 언제 또 있을지 연평도 사람들은 숨죽이고 있다. 육지에 사는 우리는 북과의 대치상황을 너무 쉽게 잊고, 외면하는 건 아닌지 정신이 번쩍 드는 하루였다. ―연평도에서

박재명 사회부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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