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눈/오코노기 마사오]日센카쿠 대응 실패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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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의 어선이 충돌한 사건은 일중(日中) 관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 발전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일한(日韓)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번 사태 처리 실패의 교훈을 찾아봤으면 한다.

충돌사건은 일본 민주당 대표선거가 진행 중이던 9월 7일 오키나와(沖繩) 현 센카쿠(尖閣) 열도 인근에서 발생했다. 중국이 이 섬을 댜오위다오(釣魚島)로 부르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순시선이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발견해 정선을 명령하자 어선은 도주하면서 순시선 2척과 부딪쳤다.

비슷한 사건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절이던 2004년 3월 일본의 감시망을 피해 중국인 우익 운동가 7명이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때는 일본 정부가 ‘정치적 판단’을 내려 7명을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 퇴거시켰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중국 선장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돼 구금됐다. 어선이 의도적으로 충돌을 반복한 행위는 악질적 행위이므로 보다 엄격하게 대응하려고 했던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포함한 일본 정부 핵심 인사들은 “일본 법률에 근거해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임 외상도, 후임자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상도 “의연한 자세”로 대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법적 해결’은 중국 정부의 태도를 강경하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민주당 정권교체 이후 대외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 중국 측 예상과 빗나갔다.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으로서는 자국민이 일본 국내법에 의해 재판받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달 19일에 선장의 구금기간이 연장되자 중국 정부는 각료(장관)급 이상의 교류 정지를 선언했다. 21일에는 유엔총회 출석을 위해 뉴욕에 체재 중이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선장을 ‘즉시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중국은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금지하고 일본의 중견건설사 직원 4명을 구속하는 등 이례적인 조치를 취해 일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본인 구속은 중국 내 일본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일 데모와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시작됐다. 이 때문에 같은 달 24일 중국인 선장이 처분보류로 석방됐고 해외 언론은 이를 두고 일본 정부가 ‘백기 투항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글에서 일본외교의 성패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취지라면 중국이 받은 외교적 타격도 적지 않았다. 중국의 난폭한 영토외교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국 위협론이나 이질론에 신빙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중 양국, 특히 일본의 ‘사건처리 실패’의 교훈이다. 선장이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순시선에 충돌했다면 별개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설령 악질적인 행위라 해도 일본 정부는 신속히 관대하게 처리했어야 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 어떤 경우라도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누구에게 유리하든 사태 초기에 충돌사건 동영상이 공개됐다면 지금처럼 영상의 일부가 유튜브에 유출돼 또다시 정치문제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동영상 유출이 일중 양국의 원리주의적 민족주의자에게 이용돼 양식 있는 온건파가 고립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투명성이야말로 최선의 무기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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