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실패한 오자와 매직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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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최고의 도덕’이라고 말했지만 현실 정치와는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다. 일본의 한 법무상은 “정치가에게 정직과 청빈이라는 고전윤리 덕목을 요구하는 것은 야채가게에서 생선을 찾는 격”이라고도 했다. 록히드 사건으로 수뢰 혐의를 받고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1심 판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1983년의 일이다.

오래전 일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총리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이번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비슷한 발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단이다. 그리고 결과다. ‘클린 클린’(깨끗함)이라고들 하는데 클리닝 가게(세탁소)도 아니고…. 오래 살다 보면 사람도 구두 밑바닥도 더러워지는 법이다.” 오자와 이치로 후보의 응원연설 도중 다나카 전 총리의 딸 마키코 씨가 한 말이다.

만담처럼 들리지만 이번 경선을 상징하는 한마디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3명의 전 비서가 체포됐고 자신도 검찰 조사를 받은 오자와 씨다. 국민의 준엄한 시선을 등에 업고 간 나오토 총리는 ‘정치와 돈’의 문제를 쟁점화했다.

애당초 기묘한 선거였다. 정부 여당의 간사장으로서 권력을 과시하면서도 계속해서 정치윤리적 문제로 추궁을 받아온 오자와 씨는 불과 3개월 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함께 사임했다. 그럼에도 그는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간 총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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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기름’ 간 총리와 권력투쟁

정책 대립이었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권력투쟁이었다. 하토야마 체제에서 당의 실권과 자금을 쥐고 있던 오자와 씨와 그의 측근들은 ‘탈오자와’를 기치로 내건 간 체제 아래서는 요직에서 배제됐다. 7월 참의원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간 씨가 인사에서 강경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자 궁지에 몰린 오자와 씨가 큰 모험을 감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자와 씨의 경선 출마를 이해해주는 국민은 적었다. 지지율에서도 줄곧 간 씨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오자와 씨는 이를 무릅쓰고 국회의원과 당원의 지지 획득이라는 도박에 승부수를 던졌다.

오자와와 간의 대립은 록히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록히드사가 전일본항공(ANA)에 대형 여객기를 팔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렸고 이 가운데 5억 엔이 다나카 총리에게 전해졌다. 다나카 씨가 체포된 것은 총리 퇴진 후 2년 뒤인 1976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전후 최대의 오직 사건이었다.

이때 총선에 처음으로 등장해 철저하게 다나카 씨를 비판한 시민운동가가 바로 간 씨였다.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그가 선전을 한 것은 다나카 전 총리를 표적으로 삼은 덕분이었다. 간 씨는 그로부터 4년 후 정계 입문에 성공했고 미니 정당의 일원에서 한 계단씩 올라 현재의 지위에 이르렀다.

반면에 다나카 씨는 자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량 득표로 당선됐다. 그는 법정과 싸우면서도 당의 외곽에서 자민당의 최대 파벌을 이끄는 권위를 과시하기도 했다. 천재 정치가가 이룬 기예였다는 지적도 있지만 비정상적인 시대의 일이었다.

오자와 씨는 다나카 씨의 총애를 받으며 실력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나카 씨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검찰의 횡포’에 반발하기도 했다. 1993년 자민당을 박차고 나와 급진적인 정치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치는 숫자’ ‘숫자에 필요한 것은 선거와 자금’이라는 다나카식 정치를 버리지 못했다. 같은 개혁을 외쳤지만 간 씨와는 출신도 방법도 다른 물과 기름이었다.

2003년에 오자와 씨가 이끄는 자유당이 간 씨가 몸담고 있던 민주당과 합당해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됐지만 그것은 정권교체라는 큰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목표가 달성된 현재 모순이 불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정치윤리 면에서 약점을 가진 오자와 씨의 강점은 강렬한 정치적 수완과 대담한 발언에서 풍기는 혁명가다운 이미지다. 오자와 씨야말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일본에 활력을 가져올 적임자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깨끗하기는 해도 박력이 부족해 보이는 간 씨에 대해 이 같은 이미지의 마법을 건 것이 오자와 씨의 전략이었다. “목숨을 건다” “최후의 전쟁” 등 비장감마저 풍기며 마법의 효과를 부풀렸다.

구시대 정치에 민심 등돌려

그럼에도 오자와 씨는 완패했다. 오자와 씨에 대한 불신감을 지우지 못하는 여론은 일반 당원의 표심에 그대로 반영됐다. 당초 유리할 것이라 여겨졌던 국회의원의 득표에서도 간 씨에게 역전됐다. 오자와 씨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대담한 정책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그에게는 뼈아픈 일이었다. 무리와 모순이 많았던 탓인지 국민은 마술의 속임수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듯하다.

오자와 씨도 간 씨도 지금까지 정당의 이합집산을 반복해온 베테랑이다. 국회 상황에 따라서는 또 연립과 정당 재편의 공작이 부상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간 씨와 오자와 씨 중 누가 주도권을 잡게 될까. 그것이 두 사람의 최후의 승부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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