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경제 포퓰리즘과 언론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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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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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폐해 경제현장 탐사보도로 지적해야”

정치스케줄에 따른 인기영합정책 남발될 듯
언론 감시기능 강화로 후유증 사전에 막아야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24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어 ‘경제 포퓰리즘과 언론의 자세’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24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어 ‘경제 포퓰리즘과 언론의 자세’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6·2지방선거 뒤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친서민’ 등의 화두를 던졌고 각료들이 앞다퉈 대기업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때 아닌 포퓰리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포퓰리즘은 안 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각료들의 발언을 선심성이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4일 ‘경제 포퓰리즘과 언론의 자세’를 주제로 토론했다.》
―최근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기업 중시의 ‘친기업’에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친서민’으로 방향을 트는 듯이 보입니다. 그 변화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전 정권에서 기승을 부리던 포퓰리즘이 다시 부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정성진 위원장=정부의 이념, 가치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지방선거 결과나 여론의 향방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포퓰리즘의 덫에 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르는 거죠. 이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나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신뢰와 관련이 있습니다. 장기 비전이나 체계에 따라 이념적 가치와 연계된 정책 체계를 만들어 신뢰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걱정을 하는 겁니다. 또 대통령의 한마디에 각 부처가 서둘러 후속 조치를 만들어 내는 풍토보다는 헌법의 가치와 큰 틀의 국정 지표에 맞춰 책임 있게 행정을 펴고 대통령은 인사와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상시적 책임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노무현 정부 때는 포퓰리즘을 보수 세력이 정권을 비판하는 화두로 삼았는데 거꾸로 야당이 우파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권을 가진 쪽에선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봅니다. 경제 회복이 빠르다고 하지만 아랫목은 따뜻해도 윗목은 추운 현 상황에선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웅 위원=이 대통령의 발언이 내용은 좋았다고 봅니다.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죠.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제정되고 작년과 올해 한 차례씩 개정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이 있습니다. 이 법엔 요즘 문제 삼고 있는 대기업의 행위를 거의 다 제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기업이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하면 정부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여럿 있습니다. 또 해마다 상생협력 추진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있는데도 주무 부처에서 제 할 일은 않고 있다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장관이 부랴부랴 지방 공단에 쫓아가고, 반성은 않고 한탄만 하는 꼴을 보입니다. 이 사람들 감성에만 영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공적 이성이 없는 포퓰리즘은 다수의 횡포로 전락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됩니다.

윤영철 위원=경제 정책의 변화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재벌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뿐만 아니라 무상 급식, 학교 체벌 문제에까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약자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포퓰리즘이 일고 있는 겁니다. 특히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서민이나 약자들이 이 정권에 등을 돌렸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 발언을 통해 즉흥적이고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정서적 접근을 하는 듯합니다.

이 위원=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합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가 지혜로운 사회라고 한 것은 옳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요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개되면서 정의에 관한 담론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만 정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덕목입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와 견해를 바탕으로 토론함으로써 정의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인사와 관련한 세간의 소문들도 이런 점이 모자라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정 위원장=공정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다수 국민이 공감한다고 봅니다. 다만 이걸 큰 틀의 정책 시스템으로 해야지 단발성으로, 인기영합적으로 하면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손상될 것입니다. 친기업 경제 성장을 하려면 부실 중소기업이나 방만한 공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고, 친서민 실용 정치 논리를 따르려면 경제 현실을 무시한 채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공기업의 고용 증대를 다그쳐야 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일관성, 신뢰성에 문제가 나오는 것이죠.

―정권은 때가 되면 바뀌지만 포퓰리즘에서 나온 정책은 두고두고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언론은 어떤 자세로 포퓰리즘에 대응하고 보도해야 할까요.

이 위원=동아일보가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발언에 포퓰리즘 요소가 있다는 점을 재빨리 지적하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제도적 접근을 해야지 캠페인 벌이듯이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제도적 접근이 무엇인지는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상생협력법을 들어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인력이나 비용 문제 때문인지 우리 언론에서 탐사보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탁상행정을 하면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엉망 정책이 나옵니다. 발로 뛰지 않는 탁상취재 또한 피부에 와 닿는 보도를 할 수 없으며 대안도 제언할 수 없게 됩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그에 대한 관심이 커야 기자들이 탐사보도에 나서게 된다고 봅니다. 이번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 그리고 거기서 불거진 대기업 때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된 사안입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기자들이 이걸 탐사보도해 보겠다는 의욕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 상황에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다음 실제 현장에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윤 위원=이번에 포퓰리즘 문제가 제기된 것은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언론에선 정책의 성과, 각종 지표와 통계를 분석한 결과 불공정 사례가 얼마큼 늘었다든지, 아니면 오히려 줄었다든지를 밝혀 포퓰리즘 문제를 다뤘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또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사실보도가 있고, 그 다음 단계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탐사보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말고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를 다루는 보도를 해야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 등에서 여든 야든 경제뿐만 아니라 여러 부문의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 낼 것입니다. 언론은 당장의 폐해는 물론이고 그 후유증까지 염두에 두고 보도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
=요즘 이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미소금융, 햇살론의 문제도 언론이 주의 깊게 점검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돈으로 제대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하는 시스템화된 지원을 해야 하는데 관료들은 구체적 성과와 눈에 보이는 수치에 매달리는 듯합니다. 과거 농기계 구입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준 것이 농민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던 사실을 되새겨야 합니다. 소액 대출 지원이 농민들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됩니다.

정 위원장=언론이 정책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보완책이 필요함을 정부나 정권에 시사해 주어야 합니다. 또 비판적인 안목을 유지하고, 외국의 예를 들어 가면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보도해야 합니다. 동아일보는 ‘MB정부 경제정책 어떻게 변했나’ 등의 기획기사를 통해, 또 사설 칼럼을 통해 포퓰리즘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고 봅니다. 특히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 시리즈는 포퓰리즘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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