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당내 ‘절차적 민주주의’부터 확립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5일 03시 00분


어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다 득표한 안상수 의원이 대표 최고위원, 홍준표 나경원 정두언 서병수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나 의원은 여성 몫이 아니라 3위 득표로 당당히 뽑혔고 친박(친박근혜)계도 한 명(서 의원) 포함됐다. 이들과 더불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그리고 대표가 지명하는 2명의 최고위원이 2012년 7월까지 2년간 집권 여당의 선장과 조타수 역할을 맡게 된다.

안 신임 대표는 “오늘부터는 친박 친이(친이명박)가 없다”면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과 함께 상생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을 앞장서 변화시키면서 국민이 걱정하지 않도록 당정청이 힘을 합쳐 함께 변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듣던 소리지만 실제 달라진 건 없었다. 새 지도부는 ‘이번엔 다르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새 지도부는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부터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도 야당에 끌려다니며 국정을 주도하지 못했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민심을 전달하는 소통의 통로는 늘 막혀 있다시피 했다. 한 지붕을 이고 살면서도 친이, 친박으로 갈려 허구한 날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국정담당 세력으로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투철한 소명의식도, 치열한 집단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웰빙 정당’ ‘초식(草食) 정당’ ‘두 나라 당’이란 말이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6·2지방선거 이후 한 달간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이병석 의원은 한나라당이 ‘고구려에 패하고 살수(薩水·청천강)를 건너는 수나라 군대를 닮았다’고 혹평했다. 그는 “질서도 없고, 동지애도 없고, 오직 동지의 등을 밟고 강을 건너려는 불순한 기도만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간에서 ‘한나라당은 정당이 아니라 마치 개인사업자 단체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모습으로는 한나라당이 상생의 정치를 펼 수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도, 국정 추진동력을 재충전할 수도, 이념 지역 세대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을 이룰 수도 없다.

새 지도부는 전당대회 과정의 진흙탕 싸움으로 생긴 불화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당의 체질을 확 바꾸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본보의 설문조사에서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새 지도부의 가장 큰 과제로 친이-친박계 화합, 당정청 관계 재정립,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 제시, 젊은층과의 소통 강화를 꼽았다.

새 지도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정권 후반기를 이끌어 가면서 2012년 총선과 대통령 후보 경선도 관리해야 한다. 현 정권의 성공적인 마무리와 차기 정권 재창출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동시에 안고 있다. ‘당내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야말로 새 지도부에 부과된 중차대한 과제다.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 룰,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 룰을 당내 모든 계파와 후보자가 승복할 수 있도록 반듯하게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당내 의사결정 방식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직 후보가 공정한 룰에 근거해 뽑히지 않으면 과거의 예에서 보듯이 내부 불신과 갈등이 깊어져 당을 병들게 한다. 후보의 경쟁력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 2012년에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표류해 총선 공천과 대선 경선에서 난맥상이 나타난다면 정권 재창출은커녕 정당으로서 존립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정당의 선진화, 나아가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 필요하다. 공직 후보 선출과 의사결정의 프로세스가 투명하고 민주적이라야 한나라당과 국정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의 분발을 기대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