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진우] 월드컵 거리응원 찬물 끼얹는 마케팅 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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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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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을 뜨겁게 달궜던 서울광장의 ‘붉은악마’ 거리 응원을 올해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월드컵 특수’를 노린 대기업의 과열 경쟁과 이들 기업 주관으로 응원전을 열겠다는 서울시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SK텔레콤이 지난해 말 서울시와 공동협약을 맺으면서 일찌감치 선점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가 가세하면서 서울광장을 놓고 두 기업 간의 물밑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서울시가 나서 이번 응원전은 현대차가 주최하고 SK텔레콤이 후원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행사 계획을 조정하던 두 회사는 ‘오 필승 코리아’(SK텔레콤)나 ‘승리의 함성’(현대차·KT) 등 기업체와 연관된 응원가를 일절 사용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 대신 ‘아리랑’이나 ‘발로 차’(클론 곡) 같은 곡만 응원곡으로 쓰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자발적으로 나오는 응원가를 왜 통제하겠다는 것이냐”며 서울광장 행사를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붉은악마 최승호 운영위원장은 “서울광장 대신 독자적으로 응원할 장소를 찾고 있다”면서도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인 12일 응원을 위해선 9일까진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고 걱정했다.

결국 대기업들이 서로 거리 응원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벌인 과열 경쟁때문에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붉은악마뿐 아니라 서울광장 거리 응원에 나오는 시민들도 널리 알려진 응원가 대부분을 부를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까지 온 데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려 했던 서울시의 잘못도 적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규모의 응원전에는 수십억 원의 관리 비용이 든다”면서 “별도 예산이 없어 기업 협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SK텔레콤은 각각 이번 행사에 들어가는 경비 20억원 씩을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이 후원해 화려한 무대가 세워지고 유명 가수의 축하공연이 펼쳐지면 볼거리는 더 풍성해질 수 있다. 하지만 2002년 거리 응원이 자발적으로 탄생한 것은 대기업 후원이나 유명 가수들의 축하공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기업들의 홍보 경쟁과 비용 후원 때문에 서울광장 응원전이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시민이 마음 놓고 응원가도 제대로 부를 수 없다면 광장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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