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 초기 최고의 발명가이다. 그는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천체관측기구인 대소간의(大小簡儀),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測雨器)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발명을 했다. 특히 자격루는 그 원리를 현재 대학에서 가르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과학적인 발명품이다.
관노 출신인 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벼슬인 정3품까지 오르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성군 세종의 탁월한 인재관과 발명에 대한 보상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영실은 경상도 지방의 관노였는데 동네에 가뭄이 발생했을 때 물레바퀴를 만들어 이를 해결한 공으로 궁궐에서 일을 하게 됐다. 세종이 그의 남다른 발명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중국 유학의 기회를 주고 면천(免賤) 특명을 통해 관료로 채용했다. 이후에도 세종은 장영실이 새로운 발명을 할 때마다 벼슬을 올려주어 정3품 상호군까지 제수(除授)했다. 조정 신료의 강력한 반대에도 관료로 임용하는 등 장영실의 발명 유공에 대해 세종이 취한 파격적인 보상은 오늘날 기업의 직무발명 보상체계와 유사하다.
특허청에 특허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한 사례(특허출원)는 지난해 16만 건을 넘었다. 이를 발명주체별로 보면 78%가 기업과 연구소 대학에 근무하는 종업원에 의한 직무상 발명(직무발명)이다. 나머지는 개인에 의한 자유발명이다. 결국 우수한 지식재산을 확보해 국가의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경제를 구현하려면 직무발명을 활성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직무발명 주체인 종업원의 의욕을 높여주는 보상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직무발명 보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무발명 보상을 하는 기업은 40%이다. 일본은 2007년 기준으로 87%였다. 보상내용면에서도 특허출원할 때 약간의 보상금(건당 10만∼50만 원)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명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실시보상과 처분보상 적용기업은 각각 15%, 12%로 매우 낮다. 실시 및 처분보상을 할 때도 보상액이 적다는 이유로 종업원과 사용자 간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 이는 CF 광고카피가 아니다. 몇 년 전 도쿄지방법원이 세계 최초의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발명에 대한 보상금으로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나카무라 슈지 교수에게 200억 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고등법원이 6억800만 엔으로 깎는 화해안을 제시하자 그는 “기술의 가치를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 정도로 생각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며 일본사회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나카무라 교수가 근무했던 니치아 화학공업 회사가 청색 LED 발명 당시 적절한 명예와 보상을 안겨 줬다면 그는 현재 조국인 일본에서 헌신적으로 연구하지 않을까.
기술이 첨단화하고 경제가 선진화할수록 기술경쟁력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식재산 확보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여기에서 승리하려면 특허출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무발명 주체, 즉 종업원에게 합리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우수한 발명을 많이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발명의 대가로 벼슬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이를 통해 민생과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용자여, 종업원에게 발명의 대가로 황금 날개를 달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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