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세정]국가경쟁력 순위는 높아지고 있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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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도전정신 버린 젊은이들

우직함이 혁명적 제품 만든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주 발표한 2010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58개 조사 대상국 중 23위를 차지했다. 이는 2년 연속 순위가 상승한 결과이며 역대 최고의 성적이다. 특히 올해에는 일본이 작년보다 10단계 하락한 27위를 차지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 이에 일본은 정부와 재계가 열등생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다. 마침 이 소식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와 겹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도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가운데 한바탕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마냥 좋아만 할 일도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순위가 뒤바뀐 주된 이유는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여 경제 부문의 순위가 크게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재정악화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노사관계(56위), 문화적 개방성(52위), 대학교육이 사회에 부합하는 정도(46위) 등 항목에서는 여전히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경쟁력 순위가 올라간 것은 다른 나라들이 금융위기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이지 우리 자신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지거나 실력이 늘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국가경쟁력 순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반드시 국가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IMD의 평가지표에는 잡히지 않지만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다른 요소가 많다. 필자는 특히 젊은이들의 도전정신과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들고 싶다. 새로운 도전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그것이 없으면 최근의 일본처럼 무기력한 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I'm still hungry.”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한 말이다. 당시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올려본 일이 없던 한국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한 것만도 대견한 일인데 히딩크 감독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배고프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끝까지 도전하는 정신을 요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인생에서의 원대한 목표를 꿈꾸기보다는 단순히 안락한 삶을 위해 의사나 변호사, 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에 모든 노력을 다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본인의 잘못보다도 부모나 학교, 그리고 사회의 잘못이 더 클지 모른다. 안정된 직장을 기대하는 부모, 끊임없이 더 좋은 스펙을 요구하는 회사 등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을 옥죄는 것은 너무나 많다. 더구나 학교조차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보다 자신들의 조그마한 기득권 지키기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러한 현상은 현 세태의 총체적인 책임일 수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졸업식에서 한 말이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일생을 바칠 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일을 함에 있어 미련함과 우직함을 유지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 시대에서는 상황 변화에 약삭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빠르게 변화를 주도하는 IT업계의 대표가 오히려 미련하고 우직함을 지키라고 충고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잡스는 유행과 관계없이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우직하게 추진했고, 그러기에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혁명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우직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학교생활에서 매일 편법이 자행되는 것을 보며 자라고 있다. 정치판의 불법 편법은 말할 나위없고 대학들도 졸업생 취업통계를 부풀리고, 국제화 지표를 높이기 위해 자격 없는 외국인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유치하며, 정부에서 돈만 준다고 하면 원칙 없는 학과 통폐합도 서슴지 않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우직함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자기는 ‘바담 풍’ 하면서 제자들에게는 ‘바람 풍’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정신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직하게 노력하는 태도가 없다면 아무리 IMD 평가 순위가 높아지더라도 우리나라의 앞날이 밝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과 우직한 순수함을 돌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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