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됐다는 게 맞는 얘긴가요.” 생뚱맞은 얘기를 아내가 꺼냈다. “아니, 좌초됐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겠느냐. 장병들의 증언까지 못 믿겠다는 건지. 누가 그런 얘기를, 생때같은 목숨이 46명이나….” 언성이 높아졌다. “며칠 전 모임에서 A가 ‘일부에서 북한이 한 걸로 밀어붙인다’고 꼬집더니 ‘좌초했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라. 몇몇이 경청하기에 한마디 했어요. 외국 전문가도 함께 조사하고 있으니 결과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천안함 사건으로 상처입은 軍사기
최근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절단면이 공개됐다. 국방부는 “외부 충격에 의한 폭발”이라고 1차원인 발표도 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선 유언비어가 난리다. 자칭 전문가들이 “너덜너덜한 절단면이 증거”라고 불을 지펴 멀쩡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미군이 훈련 중 쏜 어뢰에 맞았다’ ‘미 잠수함이 우현에서 충돌했다’는 황당한 음모론까지 ‘강시’처럼 죽었다 살아난다. 6·2지방선거 때문에 더 심한 것 같다. 남남갈등의 양상까지 엿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창군 이후 처음으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국제합동조사단이 원인을 밝혀내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군의 혁신도 주문했다. ‘강군(强軍)없이, 강국(强國)없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그는 대한민국 국군이 강하다고 했다. 동감이다. 우리 신세대 장병들은 겁쟁이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눈엔 ‘오냐오냐 키워’ 유약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1999년과 2002년의 1, 2차 연평해전과 지난해 11월의 대청해전에서 이들은 적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용감하게 맞섰다.
1차 연평해전의 전과(戰果)는 눈부셨다. 대청해전 때도 승리를 거뒀다. ‘먼저 쏘지 말라는’ 잘못된 교전수칙 때문에 기습을 당한 2차 연평해전 때도 불굴의 투혼으로 맞섰다.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으면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전우가 쓰러지면 바로 달려가 적함을 향해 M60방아쇠를 대신 당겼다.” 당시 합참에서 시시각각 상황보고를 받았던 임호영 준장(1군단 참모장)의 회고다. 그는 “선택의 여지없이 군에 온 장병들은 귀한 존재다. 참군인으로 잘 키워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장병이 아니라, 정책결정자와 군 수뇌부다. ‘햇볕 10년’의 그늘은 최근까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청해전 승리 후 북한은 보복을 거듭 다짐해왔다. 1월에는 NLL 남쪽 수역까지 위협적인 포사격으로 ‘저강도 도발’을 감행했다. 분명 과거와는 다른 이상 징후였다. 그러나 경계를 강화했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사건 이후의 보고 및 대응에도 빈틈이 많았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고, 국회 국정조사도 열린다.
그러나 방향은 강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쪽이어야 한다. 창검을 녹여 쟁기를 만든다고 평화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창검의 날을 시퍼렇게 벼려야 전쟁을 막는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숙군(肅軍)작업이 시작됐다. 하나회로 상징되는 정치군인이 타깃이었다. 문민 통치가 뿌리를 내린지 17년, 군의 자존심은 예전같지 않다. 무기나 장비의 첨단화는 이뤄진 반면 사기를 먹고사는 군의 위상이나 예우는 낮아졌다.
관심과 격려, 돈 안드는 보급품
예산이 드는 국방 하드웨어의 강화에는 한계가 있다. 군의 힘은 결국 국민의 신뢰와 존중으로부터 나온다. 군이 잘할 때 모두가 격려와 박수를 보내자. 돈 들이지 않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첩경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평화로울 때 전쟁을 대비한다. 지금도 바다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장병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자.
이제 꽃다운 젊음의 희생으로 우리 군은 강군으로 거듭날 좋은 계기를 맞았다. 그래야 서해 창공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을 천안함 46용사, 참수리 6용사, 한주호 준위와 같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참군인들의 희생이 의미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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